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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91.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20.12.02~12.05

by 독서의 흔적 2020. 12. 6.

한국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종이책 조수경 한겨레출판 ★★★★★

 

후기: 삶과 죽음의 끈 위에 위태롭게 버티고 선 당신에게

미국에 <리틀 라이프>가 있다면, 한국엔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가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책의 배경인 '센터'는 안락사를 희망하는 환자들을 모아둔 곳이다.

대기기간동안 잘 버티고나면, 환자가 원할 땐 언제든지 알약 하나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

바깥 세상에선 '자살'이 금기어지만, 이곳에선 하나의 축제처럼 여겨진다.

'부엉이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꿈'은 본인이 죽거나 다치게 되는 흉몽임에도, 그들에겐 길몽이된다.

그토록 꿈꾸던 죽음이기에, 그토록 꿈꾸던 안식이기에.

누군가에겐 '고작 그런 이유', 누군가에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치명적인 이유'로 느껴질 각자의 사연들.

왜일까. 그저 소설일 뿐인데, 마치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중 일부는 내 이야기인냥 몰입해서 읽었다. '분노의 칼날로 상대를 해칠 수 없어 본인에게로 칼끝을 돌리고마는',

'나쁜 사람이 될 수는 없어서 자신을 격리하기로 한' 사람들이 센터에 가득했다.

"자살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꺼리던 사람들은 그걸 추락사라고 했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 이건 비행사다. 누나는 하늘을 날았을 뿐이다."

어쩌다 이런 문장을 쓰게 됐을까. 사례를 빌린다 한들 문체는 빌릴 수가없는데.

눈물나게 아프면서도 눈이 시릴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문장들.

작가에겐 붙잡아두고 싶은, 미련이 남아 돌아보게 하는 안타까운 죽음이 많았나보다.

'당신'을 생각나게하는 문장들은 그런 마음에서 왔겠거니, 글을 쓰는 동안 작가 또한 위로받았겠거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푸릇한 봄을 통째로 갈아 넣은 듯 알싸하고 청량했다."

"세상에서 점점 초록 빛깔이 빠져나갔다. 어느 것이 마지막 울음이었는지 모르게 매미들이 사라졌다"

모히토를 보면,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찰나의 순간을 지날 때면 '이.서.우'라는 세 글자를 떠올리겠구나 직감했다.

어느새 마음 한 켠에는 주드가, 반대 켠에는 서우가 자리잡았다. 상처받은 영혼에겐 어쩔 수 없이 정이 들게 되어있나보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 이렇게 좋아서야. 도입부부터 작가의 말까지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꼭꼭 씹어먹고 싶었다.    

꿈에서라도 서우와 연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싶어 황급히 잠을 청해보았는데 나타나질 않네. 아쉽고 그리워라.

다가가지 못하고 서로의 그림자 위에 손을 포개는, 서툴고 상처받은 둘을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까.

"만일 당신이 종종 마음을 앓는 사람이라면, 아마 계절의 아름다움이라든가 노래 한 곡이 주는 행복 같은 것도

더 깊이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섬세한 심장을 믿었으면 좋겠다.(작가의 말)"

오래 앓았고, 종종 앓는 내게 반창고 같았던 작품.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지만, 지나고나니 한결 개운하다.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를 돌아보는 동안 섬세한 내 심장은 한층 더 단단해졌다.

고맙게도, 내게도 아침을 볼 때마다 떠올릴 '당신'이 생겼다.

 

 

인상깊은 구절

1. 스스로 죽을 권리를 인정한 시대. 아이러니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2. 산다는 건 기다리는 일 같은 거야. 친구와의 약속이든, 좋아하는 게절이든, 하물며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든,

뭐든 기다리는 게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기다리는 거라곤 죽음뿐인 사람들도 있어. 이게 남들한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본인한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거라고. 고통의 정도에는 표준이라는 게 없는 거야. 타인의 고통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고.

 

3. 에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 자기 안 믿는다고 벌하고, 다른 신 믿는다고 질투하면 그건 신이 아니다, 그건 사람이다.

아마 저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걸 신께서 듣는다면 답답해서 가슴을 쾅쾅 칠걸? 만약에 말이야, 정말 신이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을까? 힘들게 버티고 버티다 포기한 사람들을 지옥 불에 떨어뜨리는 신은

이 세상에 없을 거다.

 

4. 죽는 게 아니라 다시 깨어나는 게 공포스럽더라. 우리 또또가 다시 그 고통을 견뎌야 할까 봐 끔찍하더라.

그때 알았어요. 심장은 살아온 시간만큼 단련됐으니까 쉽게 멈추지 않는구나. 그게 참 무서운 거구나.

 

5. 차갑게 식은 몸도, 뻣뻣하게 굳어버린 다리도 아닌, 눈을 보고 알앗어요. 아, 떠났구나.

아마 그게 우리가 살아 잇는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얘기하는 이유겠구나...

 

6. 생명이 다한다는 건 정말 질긴 일이에요. 생을 견딜 만큼 단단하던 밧줄이 다 해지고 딱 한 가닥이 남았는데,

그 마지막 한 가닥이 참 지독하게 질디러다고.

 

7. 결국, 무게의 문제였다. 숨의 무게가 두려움의 무게를 넘어설 때, 마침내 떠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8. 영영 빛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희미하게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영영 암흑일 줄 알았는데,

개기일식 같은 거였어. 숨이 붙어 있으면, 숨만 붙어 있으면 빛이 완전히 꺼지지는 않더라.

 

9.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꽤 소중하지. 필요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삶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삶이 더 간절한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몰라.

삶이, 진짜 살아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

 

10.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그건 희망 같은 게 아니었다. 그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끈 같은 거였다.

자궁 안에서 모체와 태아가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날 때부터 생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그 무엇.

배신당하고 또 배신당해도 쉽게 놓을 수 없는 어떤 것. 놓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것.

지긋지긋한 생. 이게 다 뭐라고. 내일. 그게 또 뭐라고. 씨발, 그게 뭐라고 진짜.

울었다. 지나온 생을 다 쏟아내듯 나는 오래도록 울었다.

 

 

키워드: 안락사, 자살, 우울증, 자유죽음, 벚꽃, 모히또, 백합, 밀크티, 문신, 크라스티눔(내일)
꼬리(연결고리): 리틀라이프,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타인을 상처입힐 수 없어 끝내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고야 마는 이들이 있다.

혹은 상처를 고이 가리고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다정하고도 연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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