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년 독서기록

155.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09.24

by 독서의 흔적 2020. 9. 25.

한국소설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종이책 김희선 현대문학 ★★★★☆

 

후기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노화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한국사회와 그에 따른 노인혐오를 거침없이 그린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의자 / 조병화)"

신생아 수 보다 노인들의 수가 더 많은 초고령화 사회.

웰빙을 외치던 이들이 이제 웰다잉을 외치며 노인들을 벼랑으로 내몬다.

현대사회에서 웰다잉의 개념은 이러하다.

'웰다잉: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행위.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으로,

넓게는 무의미한 연장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반면에 작중의 웰다잉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단어 그대로 잘-죽는 것(=자살)을 의미한다.  

'웰다잉: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전 직접 죽는 행위. 죽음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뉴스를 장식하곤 하던 '고독사', '어느 한 노인의 외로운 죽음' 식의 제목은 더이상 이슈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진행되었고, 모두 노인들의 죽음에 익숙해져 있다.

'각종 혜택은 다 받으면서 국고를 바닥낸다'는 궤변에 마땅히 반박할만한 논리보다 동의의 제스처가 앞선다.  

우리는 각종 선거나 집회, 민폐행위를 보며 '틀딱충', '꼰대' 등 일반화 한 혐오의 말을 쉽게 내뱉곤 한다.

노인을 보며 단 한번의 눈살도 찌푸린 적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경로우대는 이제 허울만 남은 유교사상이다. 존중과 돌봄보다 혐오와 차별, 배제가 더 쉽고 편한 사회가 되었다.

젊은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었다.

 작가는 여기서 수차례 물음을 던진다.

이 모든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누구일까?

고독한 삶에서 민폐를 일삼는 삶으로 초점을 돌리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일까?

의자를 비우고, 다음 사람을 거기에 앉히는 것은 누구일까?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은 누가 부각시키고 있을까?
죽음이 너희를 (사회와) 갈라놓을 때까지. 세대 간을 막아선 투명한 장벽이 비로소 눈앞에 드러난다.

(여기서 죽음은 사전적인 의미의 죽음과 사회적인 의미의 죽음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사회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내몰리는 노인들, 그리고 내몰린 끝에 죽음을 택하는 노인들.

초고령화 사회에 출생률 통제만이 인구 수 조절의 해답인가?

아기가 태어나거나, 혹은 태어나지 않으면 증감한 인구 수를 무엇으로 조절하면 될까? 

통제하기 힘든 변수가 존재한다면 통제 가능한 변수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눈 앞에는 통제 가능한 대상이 아주 많이 있다.  

결코 해서는 안될 오싹한 발상에 절로 몸서리 치게된다.

이런 비윤리적인 상황을 누가 말하고 있냐며 불쾌감이 느껴진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곳곳에 자리한 빈 묵은 의자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원래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사방을 뒤덮은 짙은 회색빛 풍경에 스산함이 나를 옥죄인다.

 

키워드: 초고령화, 뉴 제너레이션, 웰다잉, 고독사, 노인자살, 묵은 의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