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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57.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20.09.30~10.01

by 독서의 흔적 2020. 10. 4.

사회문제/
성차별, 성폭력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전자책 봄날 반비 ★★★★★

 

후기 '한국 사회는 여성을 먹고 자랐다'

4개월.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구매한 이 책을 펼치기까지 딱 4개월 걸렸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 싶어 힘겹게 책을 집었다.

선불금, TC, 홀복.. 낯선 단어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보면,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극악무도한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성매매 현장의 거대한 착취 구조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남성이 있었다.

 

"업소를 벗어난 지금, '구매자들도 사람인데, 좋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20여 년간 업소 생활을 했지만 매너가 좋은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도 차지 않는다고."

일종의 관용구가 되어버린 표현인 '남자는 늑대다'가 떠오른다.

어릴때는 경계심을 심어주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정말로 남자는 다 똑같았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이 역겨웠다. 방석집의 존재도-거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도-처음 알았다.

유흥업소의 실체는 상상한 것보다 더 끔찍했다. 빚을 청산하기 힘든 악마같은 착취 구조에 소리없이 울었다.

그것을 묵인하는 공권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절망스러웠다. 그뿐이랴, 그들은 이 산업의 충실한 부역자였다.

없애야만 하는 산업임에도 쉬이 없애지 않는 이유는, 결국 본인들에게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성매매 집결지와 기생 관광, 버닝썬과 일부 상권을 떠올려본다. 한국 사회는 여성을 먹고 자랐다.

여성을 도구삼아 급격하게 성장한 사회는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기에 급급했다.

가해자를 벌하기 보다 피해자에게 손가락질 하길 택한 세상이었다. 언제나 연대보다 가해가 쉬웠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발버둥 칠수록 옥죄이는 사슬을 벗어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가난이 죄라면, 이들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 것은 무엇인가. 누가 이들에게 본인의 '선택'이라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때로는 그것이 나를 망치는 길임을 알면서도 뛰어들 수 밖에 없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이 있는 법이다.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난 한 여성이, 폭력을 피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살고자 나선 길 건너편은 벼랑 끝이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먼 길을 빙 둘러왔다.

모든 것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과정이고,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고민의 시작과 끝에는 수많은 죽음이 연결되어 있었다. 잊혀진 죽음, 잊혀져야만 했던 죽음, 잊게 만든 죽음들이.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사회를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여성에게 그 과정은 너무나 힘겹고 고단하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그것이 여성일때는 더더욱.

너무도 다른 삶이 이곳에 있었고, 모든 폭력의 종착지엔 여성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 '타인의 삶에 함부로 입대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일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 자신일테니까.

오늘도 나는 한 사람의 담담한 고백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배운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나'로 살기 위해 20여 년간 끊임없이 고민한 한 여성의 목소리이며,

또다른 나를 위해 당사자가 보내는 연대의 목소리이다.

흔들림 속에서 나를 찾고있을 봄날(언니)를 응원한다.

 

 

인상깊은 구절

1. 울려야 할 목소리는 흔해 빠진 수신불능자들에 의해 꾸준히 지워졌다.

그렇지 않고는 성착취 카르텔을 눈앞에 두고 '강제냐 자발이냐', '착취냐 아니냐'를 궁금해할 수 없다.

이 불필요하며 사악한 질문이 또 떠오른다면 이 책부터 완독하기를 권한다.

 

2. 내가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성매매로 유입되어야 했을까? 내가 강간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성매매를 해야 했을까?

나는 왜 성매매를 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일까?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이유를 찾아봤지만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낸 것은 누구일까?

 

3. 그 남자와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를 이용하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던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절망과 좌절을 배웠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랑을 그 남자로 인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4. 업소 창문의 창살을 없애면 성매매 여성들은 안전해질까.

 

5. 업소에서 받는 인간 이하의 취급이 싫었지만 성매매특별법이 생겨난다고 해도 업소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업소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가 없는 나를 위해서라도 성매매특별법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선불금을 당장 갚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욱더 컸다. 여성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인권이 밥 먹여주냐고,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 지 알기나 하냐고,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나의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할 사람들이 권을 들먹이냐고 생각했다.

 

6. 동생이 죽어서 선불금을 받아내지 못해 억울하다고 했다던 업주는 장례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

새 차를 자랑하며 다닌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누군가는 그 돈이 없어 자살했는데 그 죽음을 방치했던 사람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는 것이 너무나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7. 업주는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떻게 하면 집도 차도 살 수 있는지, 돈은 어떻게 하면 버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8. 구매자와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아가씨들이 온갖 폭력을 견딘 대가로 벌어들인 돈으로 업주는 호강하고 살았다.

자식은 해외 연수나 유학을 보냈고, 의사사위에게 돈을 들여 딸을 시집보냈다. 돈이 없는 것,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업주는 갈 곳이라고는 업소밖에 없는 나의 인생을 앗아간 사람들이다. 특정 업종의 업주가 더 악랄하고

나쁜 게 아니었다. 모든 업주는 똑같았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말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사치나 부리고 편하게 돈을

기 위해 성매매를 했다고 낙인찍었지만, 업주야말로 편하게 돈을 벌기 위해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

 

9. 구매자들은 내 앞에서 아내 자랑, 자식 자랑, 돈 자랑을 하면서 가난한 나를 비웃었다. '잘나봤자 몸이나 파는 년'이라는 인식이

가득했다. 동생보다, 자식보다 어린 여자들을 좀 더 싼 가격으로 구매하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던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구매자들은 나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것으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돈을 받은 나는 당연히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10. 20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는 구매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을 알선하는 포주가 없으면

매매는 줄어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에는 성매매 업소에 다니는 남성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구매를 하지 않는

남성이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성구매를 하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제는 내가 경험한 구매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11. 상담이 끝나갈 무렵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언니는 뭐가 하고 싶어요?" 내 기억으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12. 아직도 호황중인 집결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재개발뿐이었다. 키스방, 귀 파주는 방, 오피스텔 성매매, 조건만남, 채팅 앱 등

더욱더 진화된 성매매 현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성매매 업소 후기 사이트, 업소 광고 등으로 벌어들이는

그 많은 돈이 흘러가는 경로의 마지막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분노하는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

 

13. 탈성매매 이후, 업소를 전전하던 20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성노동론'과 마주할 때가 있었다. '팔려가는 공포'를

느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론에만 매몰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을 소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뿌리 깊고

공고한 구조하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을 성매매 현장의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성매매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려면,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재유입되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들부터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14.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죽을힘으로 살아가라고. 죽고자 하는 힘이 살아감으로 연결이 될까?

죽고자 하는 힘은 순간에서 끝이 나지만, 살아가고자 하는 힘은 끊임없이 다른 동력을 요구했다.

 

15. 사람이 죽었다는데, 모든 탓은 여성들에게 돌려지고 있었다.

 

16. 세상은 성매매를 경험한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돈을 받고 몸을 팔았던 여성이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성매매 여성이기에 내가 경험한 성추행과 강간은 폭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일까?

 

17. 누군가에게는 몸을 파는 더러운 여자로 낙인 찍혔겠지만, 내 나름으로는 누구보다도 충실한 삶을 살아왔던 모습들이

이곳에 남아 있다. 그런 지난날의 내 모습들은 무너지는 업소 건물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힘들게 삶을 이어나가며

착취당했던 여성들의 삶은 누가 기억해줄까? 이 공간이 사라지면 내 기억도 사라지는 걸까? 세상에서 지워지는 존재,

세상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존재로 살아야 했던 그 시간들을 위로해줄 수는 없는 걸까?

 

18. 돈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남의 성을 사는 행위를 쉬쉬하고 덮어주는 것, 더 어린 여자의 성을 구매하기 위해 어플을 만들고,

성행위 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해서 돌려보며 웃는 구매자들을 심판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회 모두가 방관자다.

성매매의 경험을 성찰하는 것은 경험 당사자만의 몫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해 '필요악'이라는 궤변으로

포장하는 문화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뿌리 깊은 성매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이 사회가 비로소 안전해지지 않을까?

 

 

키워드: 탈성매매, 성노동론, 성매매특별법, 선불금, 유흥업소, 유리방, 티켓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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