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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86. 오늘도 자란다-20.11.23~11.24

by 독서의 흔적 2020. 11. 28.

에세이 오늘도 자란다 종이책 딩가딩 와이출판사 ★★★★★

 

후기: 오늘도 아이들 얼굴을 보며 겨우 버틴다.

깔깔거리며 즐겁게 읽다가, 진지하게 정독해버린 에세이집.

아이들의 순수한 감정표현에 마냥 함박웃음이 지어지다가도, 열악한 근무환경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활자로 옮겨진 속내를 듣는 것은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사랑, 슬픔, 분노 온갖 감정이 시시각각 흘러넘치는 이곳은 어린이집이다.

딩가딩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다수의 아이를 소수의 교사가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질서를 배우는 아이, 신체를 통제하는 법을배우는 아이를 보살핀다는 것은 상당히 고된 일이다.

우리는 육아. 즉, 돌봄노동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있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아동 대비 교사수가 너무 적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를 마주할 수 있다.

이럴때면 늘 같은 말을 꺼내게 된다. "생명은 소중하다"며 태아를 지키지 못해 안달이면서, 왜 아동은 외면하는 것일까.

출생률 몇퍼센트를 운운하며 여론을 조성하는 국가가 '유치원 입소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린이집 운영 실태는 어떠한지,

그리고 교사처우는 어떠한지'에 대해 이미 파악을 해두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 반어법이다)

지금도 내 옆 선생님은 유치원 입소 조건을 두고 안절부절하며 근무하는 중이다. (단기계약직의 설움이란...!)

지인은 대체교사로 1년간 근무하다, 무릎 연골이 다 나가서 이직을 결심했다.

그렇다면 초등교사 성비를 걱정하던 국회의원들은 보육교사 성비에 대해 의문점을 가진적이 있을까?

아마 없을것이다. "아이는 낳아두면 알아서 자란다."는게 높은 분들의 의견이니.

'엄마가 해야 할 돌봄노동을 대신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 (잔인한가 싶지만, 그정도 수준밖에 안되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 뒤에 보육교사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다는 것을 미처 못 본 듯이.   

(어떤 공무원은 '어린이집 교사들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며, 내게 보육교사직을 적극 권하기도 했다.)

 

10년차 보육교사는 "이 일을 할수록 참 귀한 직업이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귀한 직업은 어떤 대접을 받고있는가. 아이 열 다섯을 보면서, 동시에 서류작업을 해야한다.

부모들을 위해 수시로 사진도 찍어야한다. 야근은 기본이요, 주말 반납은 옵션이다. 

작가는 책에서 "이곳이 사진 맛집"이라며 자조섞인 웃음을 내비친다.

MD는 '뭐든지 다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보육교사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전부 다 교사의 몫'이라는 단어인가 싶기도 하다.

실상이 이러하다보니, '돌봄의 질'이 상대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

모든 교사가 맡은바 최선을 다하겠지만,

교사 두 명이 아이 열 다섯을 보는 것과 교사 한 명이 아이 열 다섯을 보는것은 상대적으로 차이나기 마련이다.

매해 누리교육이다 뭐다 교육제도를 개편하기 이전에, 보육교사에 대한 복지가 최우선되어야 한다.

2년간 평가인증 교육 진행도우미로 일한 경험이 있다. 속타는 교사들 마음도 모르고 교육제도는 잘도 바뀌는구나 싶었다.

작성해야 하는 서류 양식을 보면서, 이게 교사업무인지 사무직 업무인지 긴가민가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당황하는 내 모습과는 반대로 참석한 교사들 얼굴은 무덤덤했는데, 알게모르게 피로감이 내비쳤다.

아이들 얼굴을 보며 겨우 버틴다는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말인지. 버틴다는 말이 그때만큼 슬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딩가딩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이렇게 심각한 내용이 아닐수도 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말하고자 한 것보다 더 멀리 내다본 듯한 기분도 든다.

후기를 쓰면서도 몇 번을 고치고, 다듬고, 이게 내가 하고싶은 말이 맞나 싶어 수차례 뜯어고쳤다.

몇 번을 고치든 이 결론으로 도달했다. 어쩔수 없구나, 이 책은 나한테 너무 슬펐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들은 오늘도 자라고, 내일도 자란다. 앞으로도 쑥쑥 자란다. 딩가딩, 그리고 다른 교사들과 함께.

1mm라도 좋으니 우리도 함께 자라야 하지 않을까.

돌봄노동이 당연시 되지 않는, 노동으로써 존중받는 시대가 도래하길 바란다.

보육교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싶다. (더 이상의 다크서클은 그만-) 

 

+) '아이다움'을 강요하지 말것. 언제부턴가 일찍 철이 든 아이를 만나면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책을 통해, 그런 시선은 아이를 '미완성'의 존재로 단정짓는 일종의 편견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참 귀한 에세이집. 타인의 일상을 전해들으며 내가 미처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경험한다.

 

 

인상깊은 구절

1. 새로운 단어를 이해하고 흥미로워하며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쉬운 단어'는

어른들이 멋대로 정해놓은 한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2. 감자는 새로운 선생님들이 자신을 모를까봐 걱정했던 것이 아니었다. 감자와 내가 그동안 나누었던 대화, 함께한 시간,

때로 갈등했던 순간까지 기억하며 앞으로의 시간은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쌓아온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 시간들은 무엇으로 대체되거나 바꿀 수없다는 걸 나도 감자도 알고 있었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고 감자에게 새로운

선생님에게 꼭 전하겠노라고 선생님도 감자를 잊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고 꼭 안아주었다.

 

3. 첫 헤어짐은 마냥 세상이 끝날 것 같고 다시는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연이 있었다. 그러나 같은 사랑과 같은 애틋함은 아니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도 그 때 아이들은 내게 유일했으니까. 언제나 아쉽고, 아쉽다.

 

4. 아이들은 진심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마음을 열고 받아준다. 오히려 어른들이 진심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더 서툴다. 진심을 담아 말해도 의심하기도 하고 진심인 척 거짓을 전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다르다.

진실어린 애정에 아이들은 늘 진심으로 반응한다. 온 마음을 다해 함께 웃고 기뻐하고 서로 애정을 전한다.

어른들이 어려워하는 바를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해낸다. 어른도 아이였을 때는 알고 있었을텐데, 언제 잊어버리게 된 것일까?

 

5. 미디어에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만을 담는 것에도 나는 반대한다.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들이 맞다.

그렇지만 하루 중 사랑스럽고 귀여운 순간은 아주 잠깐이다. 아이들은 울고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며, 바지에 소변을 보고

물건을 정리하지 않고 던지기도 한다. 어른들은 당연하고도 쉽게 해낼 수 있는 많은 행동을 몸에 익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을 알지 못한다면 카페에서 떠드는 아이, 식당에서 우는 아이를 보며 "부모가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이다.

 

6. 교실 안의 유일한 어른은 교사 한 사람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권력이 된다. 무조건적인 자유가 아닌 규칙과 한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노력한다. 오늘 성공했다고 내일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늘 노력하고, 늘 깨어 있어야한다.

 

7. 세상의 한 쪽이 기울어져 있다고 기울어져 있는 한 쪽만을 가르칠 순 없다. 아이들은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나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어느 쪽을 이야기해야 하나, 어느 무게로 말해야 하나를 매일 고민하고 그것은 항상 어렵다.

어려운 일이다. 자란다는 것, 배워간다는 것, 산다는 건.

 

8. 한 번은 조카의 생일 날,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조카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에게!"라고 소리 지르듯 외치는 모습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을 보고 한참 뒤 눈물이 났다.

스스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4살의 아이처럼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9.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의 어린이의 욕구는, 언어는 어떠한지 들어보기를 바란다.

묻어두었던 내 안의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겠다. 어린이는 미완성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존재이며 조금씩 자라가야 한다.

나와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처럼 말이다.

 

10. 모든 워킹맘들이 그렇겠지만 내 일을 하며 아이 양육을 병행한다는 일은 내가 산다는 의미보다 '살아진다'는 의미가 크다.

무언가 촘촘하게 짜여진 다람쥐통에 흐름에 맞춰 몸을 넣어 같이 굴러가야하는.

그렇게 굴러가다보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놓치기 쉽다.

 

11. 아이들이 표현하는 여러 말이나 행동은 포장지이고 포장지 속 내용이 마음이니 포장지에 놀라 반응하는 교사보다는

포장지 속 내용(본질)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교사가 되는 게 아이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게 도움이 되었다.

 

 

키워드: 보육교사, 돌봄노동, 어린이집, 아이들, 유아, 영아, 어린이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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