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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47. 유럽 낙태 여행-20.04.26~04.27

by 독서의 흔적 2020. 4. 29.

비평/여성문제 유럽 낙태 여행 종이책

우유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봄알람 ★★★★★

 

후기 '국가를 넘어선 연대 혼자가 아닌 모두와 함께'  

너무 늦게 읽었나 싶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한참 남았으니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낙태죄 폐지를 외치던 그때, 서명 정도면 내 할 일은 했다며 뿌듯해 하고있었다.

불합치 판결이 났을때도 다행이다 기뻐하기만 했었지 낙태죄에 대해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몰랐다라고 말하기엔 이것은 외면을 넘어선 무관심이었다.

내가 사회 속으로 숨어들고 있을때에 한쪽에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싸우는 사람 등에 업혀서 편한 길을 걷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중간중간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차근차근 밑에서 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우선은 읽자. 읽고 알아가자.

 

한국에서 여성인권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대개 유럽권을 예시로 든다.

여러 편견에서 온 일종의 문화사대주의라고 생각한다.

낙태허용인 국가도 있고, 한국에 비해 더 많은 활동가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니까.

여성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한 몫 했다. 그것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모른채...

유럽권이면 당연히 한국보단 나을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한.오.해.였다.

낙태허용 국가가 있었어도 그것은 조건부 허용이었다.

지정된 병원에서만 시술이 가능하지만, 병원은 전국에 12곳 뿐이거나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다보면 낙태허용 기간을 훌쩍 넘긴다거나 하는 문제가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까 그 '어디에도 여성의 권리가 온전히 얻어진 곳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종교와 정치세력이 결탁하여 과거로 돌아가려는(낙퇴불법)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들도 있었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성경 어디에도 낙태가 죄라는 말은 없어요. 단지 종교의 정치적인 입장이죠.'

라는 말이었다. 그동한 숱하게 들어왔던 '낙퇴는 죄악이다. 아무튼 그렇다.' 라는 말들이

사실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나온 말이었다니.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때는 인구제한을 위해 낙태를 허용하더니 이번에는 저출산을 빌미로 낙태를 막으려고 한다.

여성은 국가재산을 위한 은행인가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낳으라면 낳고 낳지말라면 낳지말고. 그 어디에도 여성의 의견이 우선시 되지 않는다.

낙태반대진영에선 말한다. '이렇게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를 하는 여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되돌려주고 싶다. '낙태를 불법으로 하면 사망하는 여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세상 어느 여자가 낙태가 합법이라고 심심하면 병원을 가겠는가.

성관계를 맺고나서 '임신했더라도 낙태하면 되는거지'라 생각하는 여성이 몇이나 있겠느냔 말이다.

혹여나 있다한들 그것을 막을 권리는 남성에게 없는 것이다.

임신의 주체는 여성인데, 그 어느 책임도 지지않는 남성의 입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대체 어디까지 여성을 자신들 소유물로 그리고 하위존재로 2등시민으로 볼 것인지 물어나 보고싶다.

우리에겐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아이를 낳을 권리가 있다.

 

2019년에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있었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지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다른 여러 국가들을 보면 이것이 또다른 제한을 불러오리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까지 방심하지 않고 지켜볼 일만 남았다.

남성에게 주어진 권리가 더 많은 곳에서 어떻게 수정이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국가로 인해 너무 많은 딸을 잃었고, 또 너무 많은 엄마를 잃었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과연 여자들만의 문제인지 모두 함께 돌아볼 때가 되었다.  

 

논문 읽는게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주구장창 이곳저곳 다니면서 인터뷰만 하지 결국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제대로 된 권리가 있는 국가가 없는데 해결책이 있을까. 더 나은 길로 가는 것에 대한 조언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다. 단 하나, 모두가 함께여야 이 시련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이다.

오히려 접근하는 방법이나 시선에서 보면 이 책이 더 낫다는 입장이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서 좋았고, 덕분에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생각할 수 있었다.

국경을 넘어 이렇게 연대가 가능하구나 싶었고, 읽는 내내 활동가들의 에너지가 전해져서 좋았다.

특히 다니엘라의 '시작했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겠어요?'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을 위해서 일하는 여성들. 멋지지 않은가. 아픔은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두가 연대하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 이리저리 부딪치고 싸우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가고자하는 종착지는 같기에.

오늘도 우리는 소리높여 외친다. '이것은 내 포궁입니다.'

 

인상깊은 구절

1. 보험이 자국민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탓에 프랑스에 체류하는 외국인 여성은 의료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프랑스를 비롯하 유럽의 페미니스트들은 재생산권이 유럽 대륙 어디서나 평등한 권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2. 지금까지 우리는 임신 중단을 살인에 등치시키는 논리를 가까스로 방어하는 데 급급했고,

원치 않는 임신이 여성의 인생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를 최대한 세세하게 늘어놓는 방식으로 여성의 선택권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권리는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불행을 막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원할 때에 임신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행복을 위한 것이다.

 

3. '여성들의 무분별한 성행위와 그에 따른 낙태'라는 이미지에는 쾌락적인 성관계에 형벌로서

임신을 뒤따르게 하겠다는 징벌 심리가 분명하게 깃들어 있어요.

 

4. 보부아르의 책을 읽고 느꼈어요. 사랑은 우리에게 큰 힘을 주고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타인이 자유롭지 않다면 나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나 혼자서는 나를 구할 수 없어요.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지요.

 

5. 주어지지 않은 권리를 거머쥐고자 싸웠던 과거를 배우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는 단절된다.

투쟁 이전을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 권리는 태초부터 있었던 것, 확대되지도 축소되지도 않는 것으로 남는다.

 

6. 우리는 타인의 어떤 행위에 잘잘못을 판단하게 만드는 사회윤리 안에서 자라났지만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건 사회의 기본이고, 낙태도 다르지 않아요.

 

7. 남자들이 화를 낸다는 건 우리가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8. 한번 얻은 권리, 한번 진보한 사회 인식은 쉽사리 퇴보할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인간은 어떻게든 진화하고, 일단 알을 깨고 나오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그런 말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보아온 세계의 현실은 이와 많이 달랐다. 얻어낸 권리는 언제든지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박탈될 수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쉽게 더 나빠질 수 있다. 루마니아에서도 보지 않았던가.

세계는 누군가에게 한순간에 지옥이 될 수 있다.

 

9. 낙태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하는 여성은 없다. 그리고 여성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 두 사실만 보아도 결론은 명확하지 않을까. 임신 중단은, 그 신체의 주인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임신 9개월이 됐다고 해도 말이다.

 

10. 낙태죄 폐지운동은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없애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새로 만들고, 기존의 법을 여성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11. 우리가 가진 믿음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바로 여성의 삶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족

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나 마음에 든 것은 측면 디자인 이었다.

읽다가 '앞에 지나간 국가들은 어땠더라?' 궁금해지면, 해당국가 색에 맞춰서 찾으면 되니까 편했다.

디자인적으로도 그렇고, 신경을 많이 쓴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키워드: 낙태, 낙태죄, 피임죄, 임신중단, 재생산권
꼬리(연결고리): 280일

-임신이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배운 적이 있는가. 읽고나면 출산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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