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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31. 줄리아나 도쿄-20.04.12~04.13

by 독서의 흔적 2020. 4. 13.

한국소설 줄리아나 도쿄 종이책 한정현 스위밍꿀 ★★★★★

 

후기 '어느 새 눈이 녹아내리고 싹이 움튼다.'

새하얀 눈의 포근함을 담고 있지만 단숨에 읽어내리기에는 버거웠던 책.

한주와 유키노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읽고싶었지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데이트 폭력을 버텨내지 못했다.

'줄리아나 도쿄'에는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데이트 폭력의 후유증으로 모국어를 말할 수 없게 된 한주.

게이이며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임을 말할 수 없는 유키노.

과거를 숨기고 유키노의 출생에 대한 비밀도 감춘 채 묵묵히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 없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음을 숨기고 살아온 김추.

김추에게 진실인 듯 거짓인 듯 알 수 없는 이야기만을 늘어놓던 어머니.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남자들에 의해 사라진 줄리아나 도쿄처럼

남자로 인해 목소리를 잃은 다섯 사람.

평생 자신을 위한 단상에 올라본 적이 없는 오해받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인생은 때로는 폭설처럼, 때로는 진눈깨비처럼 흘러간다.

유키노는 언제 눈들이 녹아서 세상의 더러움이 드러날지 모르겠다며 두려워 했지만

그는 알까, 이 눈이 지나고 봄이 오면 또 다시 싹이 튼다는 것을.

눈은 녹아 물이 되고, 그 물은 더러움을 씻어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빛이 나타난다. 유키노에게서 한주에게로 , 한주에게서 김추에게로.

그 빛 아래에 자그마한 단상에 올라선 한주, 유키노, 김추가 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사박사박 내리던 눈이 어느새 녹아내리고 초록빛 싹이 움튼다.

사실은 모래 요정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그럼 유키노는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네요." 답하는 한주의 말에,

김밥의 끄트머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준다는 한주의 이야기에 "그럼 한주는 나의 끄트머리야." 답하는 유키노의 말에,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빛이 있다.

요약하자면 모래의 요정과 김밥의 요정이 서로를 지켜준 이야기이다. 

 

인상깊은 구절

1. 국가와 남성들의 폭력에 희생된 여성 노동자들의 꿈이 어째서 한결같이 결혼을하고

가정을 갖는 것인지 그 수업에 참여한 모두가 의아해할 때, 그녀는 그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2.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여성 노동자들은 온몸을 던져 말하려 했다.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작업복을 벗어버리고서.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녀들은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만다.

겨우 낸 목소리가 또다른 폭력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형편없는 저임금에 항의하며 알몸으로 거리에 나섰던

여성들의 그 시위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조차 남지 않았다.

 

3. 분명하게 고르거나 버리지 하는 경우가 삶에는 훨씬 많습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 인생에는 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4. 언젠가부터 생각을 시작하면 그 끝엔 늘 한주가 있었다.

그 옆엔 다시 한수가 서 있었다.

자꾸만 두 사람을 같이 세워두게 되었다.

아니, 한수가 유키노의 바로 앞에 있고 그 뒤에 언제나 한주가 있었다.

앞에 있는 건 분명 한수인데 선명한 건 한주라서,

자꾸만 유키노가 뒤를 돌아 한주를 보게 만들었다.

 

5. 한주는 다시 한번 목이 메였다.

자리를 끊임없이 선택하지만 그곳에 완벽히 소속되지는 못하는 삶들.

어째서 모든 선택들이 전부 '진짜'가 될 수는 없는 걸까.

 

6. 한주라는 이를 알게 되어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을 온전히 내보일 수 있다면, 바로 발 디딘 그곳이 단상이라는 것.

 

7. '오키나와는 고무나무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대'

'섬을 지켜주는 것처럼?'

'웅, 뿌리가 얽혀 있어서 태풍으로부터 오키나와를 지켜주었대. 근사하지?'

'부리가 얽혀 있으면.'

'응.'

'이 끝에 있는 나무와 저 끝에 있는 나무가 서로 보지는 못해도.'

'서로를 지켜주고 있겠지.'

'그렇구나.'

'그렇지.'

 

사족

견디기 힘든 이야기가 곳곳에 있었음에도 한주와 유키노의 목소리가 계속 듣고 싶어서

이 책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뒷표지에 실린 김화진편집자님 평이 계속 맴돈다. '슬픔을 녹이고 지어진 목소리의 왕국'."
계속해서 언급되는 정추선생님이 작곡한 곡들을 찾고싶었는데, 능력부족으로 실패.
대신 선생님 곡을 재해석한 이승규 작곡가의 '정추, 1923-2013'을 덧붙인다.
가만히 듣고있으면 짙은 그리움이 느껴지는 서글픈 곡이다.
https://youtu.be/B9T7frfMtJ

 

키워드 : 줄리아나 도쿄, 정추. 눈, 데이트 폭력, 부산, 모래의 요정, 김밥

 

꼬리(연결고리) :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유키노의 어머니가 오키나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미군부대와 가까이  위치한 오키나와의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와 일련의 사건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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