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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국 | 프시케의 숲 | ★★★★★ |
후기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진실된 명제'
죽음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죽음은 한가지의 형태로 귀결되지 않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려낸 잘 만든 블랙코메디.
예술(생명체의 아름다움)을 전시하는 '장미 박람회'라는 제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에나 일어날 수 있는 공통적인 사건이며,
죽음에 대한 침묵은 더 많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하여 불치병 환자 셋을 통해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죽음을 선고받은 자들의 죽어가는 모습과 무덤을 영상에 담아내고 싶다."
한 초보 피디의 발상에서 시작된 독특한 기획.
잘 만든 예술로 남기고 싶었던 피디의 의도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 보고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한 지식인의 아내.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남겨질 어머니 단 하나만은 두렵다. 부디 어머니가 이기심을 내려놓고 잘 지내길 바란다는 한 노동자.
내가 언제 죽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찍어나 보자며 그의 예술에 흔쾌히 동행하는 한 예술가 친구.
모두에게 평등한 동시에 평등하지 않은 죽음은 초보 피디를 이리저리 쥐고 흔든다.
앞선 두 죽음은 순탄하게 흘러갔지만, 마지막 죽음이 꽤나 말썽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깨달음을 얻은 친구를 통해 이 예술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난다.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야. 세상에서 하나 뿐인 솔직한 일이 죽음이야."
그가 믿고 있던 예술에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죽음은 단 하나의 진실인데, 그것을 기록한 예술은 진실에 대한 영원한 타협과 절충인가 아니면 진실 그 자체인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그 죽음을 지연시키는 행위는 두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산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죽어가는 자를 위한 것인가.
많은 물음을 뒤로 한 채 답할 수 있는 한가지는
죽음은 결코 두려워 할 것이 아니며, 또한 죽음은 예술로 그려낼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죽음의 박람회였다.
인상깊은 구절
1. 남편은 죽음과는 얘기를 나눌 가치가 없다고 다시 한 번 얘기했어요.
죽음이란 'NO'라는 대답 하나만을 말할 줄 알기 때문에, 죽음은 논쟁을 할 상대가 아니라고요.
2. 지금 결혼 생활 17년을 되돌아본다면, 마지막 열흘 동안은 제가 그이의 부인이라고 느낄 수 있었어요.
아마도 이것을 얘기한다면 시청자들께 좋은 인상은 드리지 못하겠지만,
고백하건데 저는 남편이 죽어가는 와중에 처음으로 그이와 행복했습니다.
3. "네가 원하는 것을 얘기해. 하지만 멋져야만 돼! 아름다운 것이 예술이고, 예술이 된 것은 이미 거짓이 될 수 없는 거야."
"아론, 모든 예술은 거짓이야."
"그래, 하지만 예술은 믿을 수 있는 존재로서의 거짓이잖아."
"믿는다고? 뭘? 진실에 대한 영원한 타협과 절충을?"
(중략)
"난 이것만은 믿어. 그러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라는 것 말이야."
"말을 돌려 또 농담을 하자는 거지?"
"기다려봐.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야. 세상에서 하나뿐인 솔직한 일이 죽음이야."
사족
재밌다... 어떤분이 '나만의 통곡리스트(세일즈에 실패한 책)'에 이 책에 대해 기록해두신 것을 보고 골랐는데,
통곡하실만 하네. 작가의 다른 작품은 없나 찾아봤는데, 국내서는 이 책 하나 뿐이구나ㅜㅜㅜ
생과 사를 넘나들어본 사람이기에 쓸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통찰이었다.
키워드 : 죽음, 예술, 장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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