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소설 | 리틀라이프1,2 | 전자책 | 한야 야나기하라 |
권진아 | 시공사 | ★★★★★ |
후기 '기나긴 장마가 삼켜버린 어린 삶'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고통과 슬픔을 보여주는 작품.
아동학대(신체적), 성착취, 장애, 자해, 데이트 폭력, 아주 친밀한 사람의 죽음 등
온갖 부정적인 사건사고는 다 짊어지고 있는 주인공(주드)의 인생.
참 많이 울었고, 많이 고통스러웠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벽을 쿵쿵 치기도 했다.
어린시절의 학대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그 상처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주변사람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하면서 스쳐지나간 인연들을 생각해본다.
딱 한사람만 있으면 됐다. 한사람의 개입만. 좀 더 일찍 애너를 만났더라면, 누군가 관심을 보였더라면.
'ㅁㅁ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울음 섞인 가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주드의 인생을 돌아본다.
이렇게까지 치달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앗아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그 또한 인생인 것을.
행복 뒤에 불행이, 불행 뒤애 행복이 온다는 공식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지 않는다.
불행 뒤에 불행이, 행복 뒤에 행복, 행복과 행운이 동시에 올 수도 있다.
모든 인생이 같을 수 없고 모든 결말이 똑같을 수 없으니,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보고, 그 자취를 뒤돌아보며 무엇인가 배우는거겠지.
하지만 주드의 인생을 두고 어떤 것을 깨닫고싶지 않다. 정말이지 그건 너무 잔인하다.
하루를 살아내는 미약한 숨마저 앗아가는 연이은 불행을 두고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을까.
그래도 이 모든 배경이 외국이어서 이만큼의 인생이 가능했으리라-
(직업인으로서의 성공과, 적절한 의료 조치, 세대를 아우르는 우정 등)
그러니 절대적으로 little한 인생이 아니었다고 감히 위안삼아 본다.
누군가에게 쉬이 추천하기 힘든 책이지만, 읽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이렇게 격한 감정에 휘둘리는 경험을 과연 몇이나 해보겠는가.
주위의 누군가가 잊혀지지 않는 경험으로 힘들어할 때, 과연 주변인으로서 어디까지 개입하고 도울 것인가.
만약 그 고통이 주변인인 나까지 해하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 것인가.
자해가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고통을 잊게 해주는 도구라면 막아야 하는가 못 본 척 해야 하는가.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추천하신 트친님 말씀대로 여름이 되면 늘 생각날 듯 하다.
기나긴 장마가 이윽고 삼켜버린, 빛날 수 있었던 생명 하나.
little-짧은, 어린, 가련한- 가련했던, 성장이 멈춘, 짧은 인생에 나지막이 인사를 건넨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선 환한 웃음만 가득하길-
+) 윌럼의 절대적인 믿음과 애정이라던지, 해럴드의 사랑이라던지, 제이비와 맬컴의 우정이라던지,
앤디의 지속적인 치료와 관심이라던지. 과연 실제로도 저런 관계를 쌓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특히 한국에서)-하는 물음과는
별개로 참으로 빛나는 관계였고, 우정이었고, 사랑이었다.
영상화는 차마 반기지 못하겠다. 배우들 멘탈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 특히 주드.. 심리적지배, 온갖 학대와 착취, 자기혐오 등
이걸 연기할 배우가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리 없다. 영향받는 관객도 꽤 있을듯하고. 궁금하지만 궁금해하지 않을래.
제이비 작품들(연작시리즈)은 영상으로 보고싶긴 하다. 그치만 루크랑 케일럽을 견딜 자신이 없군요.
보다가 팝콘 등 온갖 것을 던지지 않을 자신이 없다입니다. 혈압올라 쓰러질지도 모름.
인상깊은 구절
1. 윌럼의 침대 아래 주드의 존재는 바다처럼 익숙하고 항구적이었다.
2. 평일 저녁의 지하철 여행에서 그가 또 좋아하는 것은 빛이었다. 지하철이 덜커덩거리며 다리를 건너가고 있으면,
빛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차량을 가득 채우고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고 그들이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의 얼굴, 미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젊은 시절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그런 빛이 시럽처럼 차량
안으로 퍼져나가면서 깊게 팬 이마의 주름을 지우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번쩍거리는 싸구려
옷감의 광택을 매끄럽고 은은하게 어루만지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3. “내가 배운 한 가지는,” 그녀는 말했다. “아직 그 일이 생생할 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야.
아니면 절대 이야기하지 않게 될 거야.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가르쳐줄게. 왜냐하면 더 오래 기다릴수록
그건 점점 더 힘들어질 테고, 안에서 곪을 테고, 넌 언제나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물론 그 생각은 잘못된 거지만, 그래도 넌 언제나 그 생각을 할 거야.”
4. 이봐, 주드, 살다보면 가끔 착한 사람들에게는 근사한 일들이 일어나는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바람과는 달리
그런 일은 흔치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착한 사람들은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는 계속 살아가면 되는 거야.
이런 생각도 좀 해주라고. 좋은 일을 한 사람도 그걸로 기쁨을 얻는다고, 좋은 일을 해줬더니 자기는 그럴 자격이
없다거나 그럴 가치가 없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들을 기분이 아니라고 말이야.
5. 물건들은 깨지고, 때로는 수리되고, 대부분의 경우엔 어떤 게 망가지더라도
삶이 스스로 변화하면서 그 상실을 보상해주지. 때로는 아주 근사한 방식으로 말이야.
사실, 어쩌면 나도 결국 그런 종류의 사람인지 몰라. 사랑을 담아, 해럴드.
6.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믿게 된 사람들이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그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걸 이해하게 됐고,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런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그래도 인생은 쉼 없이 앞으로 나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를 실망시킨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적어도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이 하나는 있었기 때문이다.
7. 내가 보기에, 우정의 오랜 요령은 너보다 더 나은 사람들-더 똑똑하다거나 멋진 사람들이 아니라 더 친절하고
더 아량 있고 더 관대한 사람들-을 찾는 거야. 그리고 그 친구들이 네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감사하고, 친구들이
너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아무리 나쁜-혹은 좋은-말이라도 경청하려고 하고, 그들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게 제일 힘든 일이야. 하지만 가장 좋은 일이기도 해.
8. 넌 왠지 네가 매력 없고 사랑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작정하고 믿으려는 것 같아서, 어떤 경험들은 네 몫이 아니라고
결정해버린 것 같아서 가끔은 걱정이 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주드. 너랑 같이 있게 되는 사람은 정말 행운아일 거야.
9. 주드와의 우정은 자기에게도 진짜배기,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가장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도 본질적인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자기가 못 볼 때조차 주드는 알아봐주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줬다.
마치 주드가 지켜봐주고 있다는 게 자기를 진짜로 만드는 것 같았다.
10. 그는 여기서 몇 년이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 심지어 그 사람이 가장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울 때조차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니, 행복하다. 그렇다, 그는 행복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로. 자신도 알다시피,
그는 단순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사람과 같이 있게 된 것이다.
11. “윌럼.” 주드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난 꽤나 정상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렇지 않아?”
그 목소리에 담긴 긴장과 희망이 다 느껴졌다. “아니.” 그가 말하자 주드가 움찔했다.
“내 생각엔, 모든 상황을 고려하건 안 하건, 넌 굉장한 사람이 됐어.” 그러자 드디어 주드가 미소 지었다.
12. 살아갈 새로운 이유를 매일매일 찾겠다고 그는 자가 자신과 약속했다.
어떤 이유들은 조그맣다. 좋아하는 맛, 좋아하는 교향곡, 좋아하는 그림, 좋아하는 건물, 좋아하는 오페라와 책들,
다시 가는 곳이건 처음 가는 곳이건 보고 싶은 장소들 같은.
어떤 이유들은 의무들이다. 그래야 하니까. 할 수 있으니까. 윌럼이 원할 테니까.
어떤 이유들은 크다. 리처드 때문에, 제이비 때문에, 줄리아 때문에. 그리고, 특히, 해럴드 때문에.
13. 주드는 행복할 자격이 있었어. 행복을 보장받는 사람은 없지, 모두 다 그래. 하지만 주드는 행복할 자격이 있었어.
키워드: 인생, 아동학대, 심리적 지배, 우정, 사랑, 그림, 리스페너드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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