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 세월 | 종이책 | 방현석 | 아시아 | ★★★★★ |
후기 '슬픔마저 차별당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나라'
여동생을 구하고 실종된 오빠가 있었다.
엄마는 사망자로, 아빠와 아들 모두 실종자로 기록된 그 가족은 새출발을 위해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중이었다.
'혼자 남은 이 아이는 어떡하냐'며 앞다투어 보도하던 언론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유가족이자 실종자 가족인 이들에게 수색상황과 현장브리핑, 수색중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순간에 그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건너온 유가족이 아니었다면 한국 사회는 좀 달랐을까.(인터뷰 중)’
슬픔마저 차별당하는 나라에서 이들은 수없이 울었고, 힘겹게 발걸음을 돌렸다.
"니가 뭔데 까불어! 마지막까지 배와 운명을 함께하는게 선장이야."
베트남 선장의 한마디는 작가가 하고싶었던 말이자, 우리 모두가 하고싶었던 말일 것이다.
"사람이 아직도 바닷속에 갇혀 있는데...사람들이 돈 얘기를 해..."
농성천막 코앞에서 피자를 나눠먹던 무리를 기억한다.
차마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세월호에서 파생된 온갖 혐오발언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죽었지만 어차피 내 일은 아니'라며 너무도 쉽게 악한 마음을 드러내는 이들을 보곤한다.
슬픔마저 차별당하는 나라는 슬픔마저 조롱의 대상이 되는 나라였다.
베트남유가족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는 '보상금을 얼마나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냐'는 말을 듣고,
고향에서는 '돈보내주는 기계가 고장나서 어떡하냐'는 말을 듣는 이들은 이제 어디에 발 붙여야할까.
떠나간 이는 돌아오지 않는데, 내뱉은 말은 누가 주워담을 수 있을까.
차별과 혐오가 일상이 된 이들에게 묻고싶다.
"당신이 딛고 서 있는 그 땅 위는 안전합니까?"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베트남에 다녀왔다.
<세월>에는 판반짜이 가족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동시에 작가의 메시지 또한 놓치지 않는다.
세월은 세월호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세월에 갇혀버린 지독하게 슬픈 인간의 군상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하고자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면 81페이지의 적은 종이 안에도 이야기가 충분히 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뒷표지의 추천사만 제외하면 아쉬운 점 하나 없는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리고 가족 인터뷰.
판반짜이 가족은 더 많은 구설수에 시달렸다. 언어가 같지않아도 어조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쉽게 간과하는듯 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이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수색중단 회의에 끼지못했다는 말이 내 일인듯 슬펐다.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0973.html#cb
베트남인 ‘세월호 유가족’ 판반짜이는 말한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베트남 유가족 판반짜이씨 부녀 아직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유가족 세월호 최약자 이방인의 사연과 상처
www.hani.co.kr
인상깊은 구절
1. 사람은 누구나 삼십육만오천 번 자신을 불러주어야만 엄마 아빠를 입에 담지만
죽을 때까지 엄마 아빠를 삼십육만오천 번 부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단다.
너에겐 오늘이 마지막이니 실컷 아빠를 부르렴.
2. 로안은 엄마의 말을 잊는 것이 엄마를 잊는 일이 되는 것처럼 시현에게 ‘메’를 기억시키려 애썼다.
3. 돈이 인격이고, 돈이 없으면 사람이 되지 않는 세상. 돈 앞에서 아주 공정한 나라야.
4. 여기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슬픔마저 차별 당하는 나라에서 너마저 잃기 전에, “돌아가자.”
5. 세상에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우리를 질투하는 사람이니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있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몇억씩 보상금을 받게 될 거라고 정부에서 떠드니까,
그게 부러운 거예요. 난 수백, 수천억을 준다고 해도 우리 애랑 바꿀 수 없는데 그 사람들은 애 잃고 타게 될
보상금이 질투가 나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고도 무서운 사람들인지요.
자식 죽고 자기가 보상금 받았으면 좋아했을 사람이잖아요.
난 우리 송희만 살려준다면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죽을 수 있어요.
키워드: 세월호, 세월, 베트남유가족
꼬리(연결고리): 재난을 묻다
-슬픔과 가난은 늘 차별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언제나 재난은 약한자를 향한다.
책임질 사람은 사라지고, 피해자에게 고통만 가증되는 이 사회에 재난을 묻는다.
'2020년 독서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7. 책 좀 빌려줄래?-20.08.02~08.03 (0) | 2020.08.10 |
---|---|
116. 토끼의 아리아-20.07.28~07.31 (0) | 2020.08.10 |
114. 어떤 물질의 사랑-20.07.26~07.27 (0) | 2020.07.29 |
113. 목소리를 드릴게요-20.07.22~07.25 (0) | 2020.07.26 |
112. 동생이 생기는 기분-20.07.22 (0) | 2020.07.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