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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14. 어떤 물질의 사랑-20.07.26~07.27

by 독서의 흔적 2020. 7. 29.

한국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 종이책 천선란 아작 ★★★★★

 

후기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너의 사랑''

너와 나 사이의 거리.

그만큼의 사랑과 그리움, 외로움과 슬픔.

책장을 덮은 후 밀려드는 이 감정을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이별과 눈물로 겹겹이 층을 이룬 안개 속을 더듬더듬 헤매며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모두는, 어떻게 되었을까?

등장인물들의 행복한 미래가 보고싶어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어요. 라는 뻔함이 필요하다.

작가의 문장 곳곳에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도저히 나 혼자서는 희망찬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다.

 

표제작인 <어떤 물질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읽었고,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 때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세시에 낙산공원을 오르곤 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사랑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는 그 감정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선선한 밤바람이 느껴지는 가을이 오면, 낙산공원 성벽아래의 벤치에 앉아 이 책을 읽고싶다.

어쩌면 배꼽이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사막으로>, <레시>는 많이 울었다.

별이 가득한 사막의 밤이 아빠에게 어떤 의미일지,

레시와 승혜의 손바닥이 맞닿고 둥글게 원을 그리던 그 순간의 감정이라던지를 상상하다보면,

작가에게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느껴져서 이 절절한 감정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드라이브> 이들의 데이트와 마지막을 상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다.

인간 아닌 존재의 사랑은 내가 느껴볼 일이 없으니 더 많은 상상을 하고 개입을 하게 되어, 그 결말에 큰 영향을 받는 듯 하다.

기술대체로 인해 사라지게 된 더미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서사를 줄 수 있다니.

쓸모를 다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모든 '더미'에게 안타까움을 표한다.

<너를 위해서>는 초단편이지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내 아이에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은 내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생긴다해도 유효할까.

장애유무 확인을 위한 태아감별이 옳은 것일까.

여기에 관련해서는 책 한 권을 읽어볼 예정이라 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다.

메시지가 확실하거나, 많은 여지를 남기는 초단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물질의 사랑>은 좋아하는 작품인 <애너벨>이 생각나기도 했다.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다도 돼.”

는 왜 이 작품이 표제작이어야 하는지 납득하게 되는 문장이었다.

천선란 작가의 첫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너의 사랑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 사랑으로 가득한 책이다.

다정한 작가 리스트에 천선란이라는 세 글자를 추가할 수 있어서 몹시 행복하다.

긴호흡의 장편도 궁금하지만, 단편이 가득한 소설집을 더 보고싶은 것은 과한 욕심일까.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분방한 이 글쓰기를 오래도록 즐기고싶다.

 

인상깊은 구절

1. 엄마의 병은 그녀가 살아오며 들이마신 숨의 값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필시 외로움이 끼어들었을 것이다.

물질이 몸속 곳곳에 잘 스며들어 결합할 수 있도록 외로움이 촉매역할을 했겠지.

 

2.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3.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4.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5. 지구 행성의 개체들은 사물을 단순화해서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 지구에서 같은 생명체는

단 한 개체도 보지 못했는데. 물론 다른 행성의 개체들 중에서는 피부가 다른 색을 띠고 있거나 온도나 빛의 문제로

른 특징이 두드러진 존재들도 있죠. 하지만 그것만이 차이는 아니잖아요.

 

6. 내 삶도 어쨌든 삶이라서, 기쁜과 슬픔이 공존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고 상처와 포근함이 있었다.

내가 지나쳤던 모든 사람과 사랑이, 실은 지나친 게 아니라 그렇게 내 안에 굳어져 내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라오에게 말하며 깨달았다.

 

7. 감정을 기억하고 싶을 때는 그래서 사진을 봐요. 그럼 떠오르거든요. 특히 사진은 대부분 행복한 순간들이잖아요.

몇 개 빼고는. 그러니까 이게 행복을 뽑을 가능성이 큰 복권인 셈이죠.

 

8. 은지는 지금껏 인류가 알고도 모르는 척했던 일에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았다.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그들이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아서 더 그랬다. 살기 위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죗값을 느껴야 했다.

 

키워드: 사막, 별 밤, 레시, 알, 우주, 하나, 저어새, 더미
꼬리(연결고리) :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과 천선란이 들려주는 각기 다른 사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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