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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10.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20.07.18~07.20

by 독서의 흔적 2020. 7. 22.

한국소설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전자책 엄성용, 장은호,
우명희, 지현상,
배명은, 이산화,
이시우, 유사본,
해도연, 사마란
황금가지 ★★★★☆

 

후기 '역시 여름엔 공포물'

표지 최고다. 각 단편의 포인트가 다 담겨있음.

내게 공포의 시작은 '이토준지 시리즈'였기에, 자연스럽게 공포의 척도를 이토준지 기준으로 잡고 읽었다.(자의 아님)

 

눈에 선명하게 그려져서 무서웠던 작품은 <천장세>

이 작품은 뭐라고 해야하지... 축축하고, 끈적하고 온갖 부정적인 기운이 한데 얽혀있는 느낌이었다.

"도시에서 월세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책을 만들 리 없잖아."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기분 나쁘게 찝찝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세들어 사는 부부의 묘사에서 자꾸만 <소용돌이>가 연상되어서 고통스러웠다.

천장에 세입자 들어온 후로 얼굴이 끈적끈적해졌다는 구절에서 읽고있던 책을 집어던질 뻔 했다.

정확한 상황묘사는 없지만, 어디서 본 것 같고 왠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가장 인상적이고 구역질 나던 작품이다.

 

양육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던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아내도, 아기도, 남편도 그렇게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까웠다.

후반부에 붙은 리뷰까지 읽으니 뒷맛이 쓰다.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육아는 정녕 존재하기 힘든것일까.

육아를 신성시하고 마냥 행복하게만 보려고 하는 시선에 질려버렸다.

역시 육아는 혼자하면 아주 힘들고, 둘이해도 아주 힘든 고강도 노동이다.

 

왕따 문제, 가정폭력이 불러온 끔찍한 사고 <그네>

바람 한 점 없는데 흔들리는 그네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하다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무거운 진실이 이를 상쇄시킨다.

춥대’, ‘이제 안춥대속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등줄기가 서늘해질 것이다.

 

속도감 있게 읽혀서 손을 꽉 쥐게하던 <이화령>

주인공이 내리막길을 내달릴 때, 정면으로 맞았을 바람이 내게도 전해져오는 느낌이었다.

절정인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사방이 깜깜한 오르막길을 혼자오르다가 뒤에서 누군가가 느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졸도할 것 같은데,

하필 그게 연쇄살인마라니. 그러니까 밤에는 남자든 여자든 혼자 다니면 안된다구요.

지나친 순위 욕심은 결국 자기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어마어마한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일등에게 함부로 덤비지 맙시다)

 

<허수아비>를 공포소재로 사용한 작품이 더러 있었지만, 무속신앙이 더해진 것은 처음 접해보는 듯 하다.

허수아비와 씻김 굿이라니. 무속신앙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으스스함과,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허수아비가 합쳐져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거기에 불륜이라니.

예상한 선에서 진행되지만, ‘희번뜩한 광기를 지닌 노인의 등장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더도어>는 공포 속에 비극이 숨겨져 있어서 유독 슬프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취미는 알 수 없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에 틀린 말 하나도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불을 끄지마라’, ‘혼자 있지마라’, ‘잠들지 말라는 공포물의 흔하디 흔한 금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역시 금기는 어기라고 있는 법이다.

 

<고속버스>는 말해뭐해. 나는 불륜이 끔찍하게 싫다.

살아남겠다고 쉴새없이 머리를 굴려대는 남자를 보며 그 추악한 모습에 진절머리났다.

킬러가 너무 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솔직히 죽여줬으면 했네요.

아무리 꽁꽁 숨겨도 그것을 아는 사람이 둘이 된 순간부터 비밀은 감춰지지 않는 법이다.

 

<위탁관리>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는데,

나머지 단편들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유독 튀는 이 작품이 와닿지 않았던 듯 하다.

에일리언이 언급되기에 결말을 예상하기도 했고, 손톱깎이를 삼킨게 분명한 대목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지의 생명체는 언제나 우리를 공포에 떨게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다룬 <완벽한 죽음을 팝니다>

죽음을 도와드린다는 설정은 마치 안락사와도 같은데, 이 계약이 누가봐도 허술하게 성립되는지라

정작 죽음이 어떻게 이뤄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독자를 공포에 빠져들게 한다.

만약 내가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나게 된다면 그것을 온전히 기뻐할 수 있을까.

딸의 원망과 마지막 선택이 전혀 의아하지 않았다.

 

<증명된 사실>은 읽었던 작품이라 생략. 다시 읽어보아도 치밀하다.

 

다 읽고보니, '공포가 끌리다니. 여름이 왔구나' 싶다.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재들을 기반으로 한지라, '어딘가 있을 법 하다'는 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든다.

각 단편이 엔딩이며 반전이 예상가능한 선에서 진행되는데,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그 뻔함이 더욱 공포스러웠다.

잠시나마 꿉꿉한 습기에서 도피할 수 있었던 소설집이다. 그치만 역시 공포는 힘들어.

호기심이 동해서 읽고나면 늘 후회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공포물 아닐까.

 

키워드: 허수아비, 라이딩, 혼, 외계인, 그네, 월세, 육아, 불륜, 캔버스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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