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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09. 아무튼, 언니-20.07.16

by 독서의 흔적 2020. 7. 22.

에세이 아무튼, 언니 종이책 원도 제철소 ★★★★★

 

후기 '이 세상 모든 언니들에게'

원도작가가 <경찰관 속으로>에서 숱하게 외치곤 하던 언니를 기억한다.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고, 외침도 있던, 간절하고도 다정했던 그 목소리가 자꾸만 내 귓가를 맴돌았다.

신간 예판 소식이 뜨자마자 구매 했고,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따끈따끈한 신작 <아무튼, 언니>가 되겠다.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는 그의 말과,

진솔하고도 담백한 '멋진 언니들'에 대한 고백은 나를 부럽게 만들었다.

나도 좋은 언니가 되고싶다. 진심으로. 좋은 언니만이 아닌, 좋은 동생이 되고싶다.

함께하는 멋진 언니들처럼 자신도 멋진 언니가 되고 싶다는 그.

철부지 같았던 작가의 목소리는 '태초에 언니가 있었다'를 지나

'살아남은 언니들에게'에 다다른 순간 든든한 언니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막내인데다 집과 학교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기에 동생은 유독 어렵고 힘들다던 그에게 언니라고 말하고 싶다.

 

언니, 우리 살자. 이 비스듬하게 기울어버린 운동장에서 두 발에 꽉 힘주고 버텨서 어떻게든 살아남자.

언니 말처럼 '설렁탕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하자.

그리고 이 땅에 스러져간 모든 여성들을 기억하고 추억하자.

아직까지도 우리 기억 속을 맴도는 강늡때기 할머니 이야기처럼.

더 이상 억울하게 희생되는 여자를 혼자 두지 말자.

우리도 억수로 운 좋은 여자가 되어보자. 언니 사랑해.

 

이 세상 모든 언니들에게 바치는 책. 아무튼, 언니.

작가의 다정한 진심에 기대어 한없이 어리광부리고 싶다.

원도작가의 손에서 피어날 또다른 언니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 작가님 친언니와 이모님 일화가 왜이리 슬프던지.

가부장 사회에 희생된 언니들 너무 많고,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

k-장녀는 엉엉 울고말았다. 책 표지를 보자마자 동생 글인걸 느낄 수 있는 끈끈한 혈연이란...

 

인상깊은 구절

1. '개인'이던 여성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가 되자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2. 우리 네 명이 함께하는 날에는 그 어떤 비극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넘어 확신을 주는 내 사람들.

이 언니들과 나는 시속 807킬로미터의 속도로 프라하를 향해 날아가고 있구나. 그거면 됐어.

 

3. 살아 있길 잘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죽고싶던 숱한 날이 떠올랐다 스치듯 사라졌다.

내 방 깊숙한 곳에 처박아둔 오래된 유서가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처박아둬서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게 내가 버티고 있어서,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다.

 

4. 최대한 많은 여성이 길 위로 나오기를, 어디로든 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우리가 가지 못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막연한 느낌을 현실의 생생한 감각으로 와락 안아보기를.

 

5. 난 나에게 남자냐 여자냐 묻는 사람들이, 정말 내 성별이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여자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모습이 정말 키 작은 남자로 보였다면 그런 무례한 질문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거다. 어라, 넌 여자인데 머리가 짧네? 평범하지 않아. 너는 잘못됐어. 왜 너 혼자 그러고 돌아다니냐.

너 진짜 이상하게 보여. 질문에 가려진 그들의 본심을 내가 모를 리 없다.

 

6. 나는 선한 사람이 잘되기를 바란다. 현실의 영웅들이, 그들이 쥐어짜낸 용기만큼 합당한 무언가를 꼭 받기를 바란다.

즉각적인 보상은 아니라도, 조금씩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도 얻길 바란다.

 

7. 낡아서 헤진 이불을 기운 듯 대충 봉합된 칼자국이 분명한 몸을 보며 사무치게 서글펐다.

아이를 낳았으니 제 몫을 다했다는 것일까. 한없이 적막한 안치실. 향조차 피우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은 곳.

 

8. 늘 있던 일이니까.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니까 처벌 수위도 거기서 거기인 걸까?

계속 보아온 일이니 심각성을 모르는 걸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누구 하나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9. 우리의 회피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피해자로 삼는 데 너무 익숙해진 사회가 문제다.

언제까지 이런 당연한 소리를 반복해야 할까.

 

10.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언니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뒤를 따라올 동생들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조심히 가. 그럼에도 우리는 살자. 어떻게라도. 조심히 오고 가자. 잘가, 언니, 다들. 조심히 가, 멀리 안 나갈게.

조만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 조심히 가. 도착하면 연락해.

 

11. 그럼에도 우리, 쓰러지지 말자. 우리가 맞잡은 손이 끝없이 이어져 언젠가는 기쁨의 원을 그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운이 되어주자. 세상이 심어준 혐오와 수치 대신 서로의 용기를 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갈 우리는

설렁탕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키워드: 언니, 경찰관, 친언니, 이모, 동생, 여자들
꼬리(연결고리): 경찰관 속으로

-원도작가의 언니 2부작(?) 중 대망의 첫번째 작품. 다정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직업인으로서의 경찰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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