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에세이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전자책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박은정 | 문학동네 | ★★★★★ |
후기 '승리 속에 지워진 얼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은 책.
가만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차마 읽을 수 없어 한참을 쉬고, 또 읽고 그렇게 반복했다.
참혹했던 전쟁과 그들의 삶만큼 이 글을 읽는다는게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편집자 k님이 진주에 관해서 언급했던 말을 잠시 빌려오자면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의 역사, 그리고 목소리로 쓰인 책]의 러시아 버전이 되겠다.
후기마다 읽기 힘든 책이라고들 했는데, 이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그들의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을 염려했던 작가는 울음과 비명을 극화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들의 목소리만을 담아냈다.
그 어떤 꾸밈이 없는 역사의 목소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여자가 있었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은 조국에 의해 그 존재가 지워졌다.
남자가 했어야 하는 일이니까. 여자들은 감정으로 기억해서 그 누구보다 전쟁을 참상을 정확히 기억하니까.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그 영광만 남아야 하니까. 등 이유는 다양했다.
전쟁세대가 다 사라지기 전에 이 이야기를 꼭 남겨달라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울음이 없었지만 울음이 존재했고, 비명이 없었지만 비명이 존재했다.
수업으로 배운 전쟁과 실제의 전쟁은 참혹함이 확연하게 달랐다.
도대체 전쟁의 어떤 부분이, 아니 인간의 어떤 부분이 인간을 이토록 잔혹하게 만드는 것인가 궁금했다.
머릿속에서 많은 전범국이 스쳐지나갔다.
어느 곳은 사죄를 하고, 어느 곳은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고...
여자들의 목소리를 지웠기에 그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것일까?
생명은 그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라 배웠는데, 인간의 욕망 앞에서는 그 마저도 통하지 않나보다.
언제까지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되어야 하고, 죽음이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
몇천번의 전쟁을 치르고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인간들이 어떻게 배움의 동물일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전쟁을 소재로 한 유흥거리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도 게임도 책도. 자극적이게 다루거나 지나치게 신성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쟁을 가벼이 여기는 세상이 되어선 안된다.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더 많이 기록하고, 더 많이 남겨야 한다.
그 기록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다. 더 알고 싶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아졌다.
책을 덮으면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에겐 현실이 전쟁터다. 많은 여자가 범죄의 대상이 되고있다.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있다.
언젠가는 이 목소리도 기록으로 남겠지. 여자가 이렇게 싸웠다고,
우리의 삶이 이랬다고 지나간 과거로 말할 수 있는 그 날을 목놓아 기다린다.
인상깊은 구절
1.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2.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3.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4.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중략)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5.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 색이지.
6. 역사는 만들어졌지만, 낮뿐인 삶이었으며 기억도 짧았다.
7.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8.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9. 전쟁은 결코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박제품이 아니다.
사족
처절하다. 눈물때문에 책장을 수없이 덮었다.
당시 독일의 여성조차 강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눈물난다.
전쟁 중에도 주체 할 수 없는 남자들의 성욕과,
동료들을 위해 신생아를 물에 빠트려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모성애.
그들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다른 것일까.
키워드 : 전쟁, 소녀병사, 소련, 2차 세계대전, 목소리
꼬리(연결고리) :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같은 2차 세계대전을 두고 전범국의 여자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비교해보자.
'2020년 독서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 280일-20.03.26 (0) | 2020.04.07 |
|---|---|
| 18. 덤플링-20.03.25~03.26 (0) | 2020.04.07 |
| 16. 을들의 당나귀 귀-20.03.21~03.22 (0) | 2020.04.07 |
| 15. 동사의 맛-20.03.20~03.22 (0) | 2020.04.07 |
| 14. 우먼월드-20.03.20~03.21 (0) | 2020.04.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