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 붕대감기 | 전자책 | 윤이형 | 작가정신 | ★★★★★ |
후기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해 달린다.'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
10대, 20대, 30대, 40대, 그리고 50대...
세대간의, 각자의 입장차이가 극명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돌아보는 시간.
알아주지 못하는 마음이 미워서, 맞서야 할 존재와 같아지는 모습이 미워서.
미워서, 서운해서, 속상해서, 답답해서. 그리고 안타까워서.
하지못한 말이, 마음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뻗어간다.
싸우고 밀어내고 멀어져도 결국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해 달린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 하나라면, 잠시 멈춰서서 서로를 다독여줄 수는 없을까.
말로 설명하기 애매했던 이런저런 감정과 생각이 이제야 자리를 잡은 느낌.
지면과 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모두와 대화를 했다.
이런 생각, 저런 경험, 그런 결론.
‘때로는 지친 운전수와 교대를 해야한다.’ 는 세연의 말이 와닿았다.
너와 나, 우리의 연대. 그러니까, 같이 갑시다.
서투른 붕대감기라도 좋다. 응, 응. 그 끝으로 진심이 느껴지니까.
늘 완벽할 수 없고,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
이렇게 감고 저렇게 감아보면서 각자의 방식을 찾아가는거지.
익숙치 않은 길이라 갈팡질팡 헤매겠지만 우리는 잘 해낼거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있고, 나아질 내일이 있으니까.
그 끝에 무엇이 있든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인상깊은 구절
1.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을 숙고하는 데 들일 시간과 집중력과 에너지가 없었다.
타인이 선택을 하고 먹기 좋게 만들어 입에 직접 떠 넣어줘야 소비를 했다.
2.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서 일부러 악의를 품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3.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4. 자신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겪어 성공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여성을, 멋지게 정상에 올라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 외교관이나 회사의 대표가 된 여성들을 떠올리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의 이면에
있는,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던 주상복합건물들을 볼 때의 박탈감이나 일 때문에 강남에 나갈 때면 느꼈던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위화감 같은 것들도 함께 떠오른다는 사실은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자매에서 금세 적으로 몰릴 것 같았다.
5.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은 신이 아니야. 누구도 일주일에 7일, 24시간 내내 타인의
고통만 생각할 수 없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니? 너도 그럴 수 없는 걸 왜 남한테 요구해?
6. 서른 살 때는 마흔 살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생각했어. 그 칙칙함, 꾸물꾸물한 울분을 왜 우리가
떠받쳐줘야 하는 건가 싶었지. 나이 든 선배들이 똑바르고 훌륭하면 그렇지 못한 내가 미워서 그 사람들을 질투했고,
서투르면 나잇값도 못 하고 저렇게 서툴다고 흉을 봤어. 그냥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싫었어.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안 그렇겠니?
7. 아마도 그 공포였을 것이다.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해왔을 뿐 세상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부채감,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과격함을 지니고 세상과 싸우겠다고 나선 어린 여성들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는
생각, 저 사람들이 더 나은 곳으로 아주 멀리까지 가게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 그런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8.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얼굴을, 외로움을, 단단하지 못한 마음을, 세연이 혼자 오랫동안 노력해 극복했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여전히 갖고 있는 진경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잊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다.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진경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다른 무엇도 아닌 미움이라는 사실을, 세연은 잘 알았다.
9.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채이는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걸까? 의제 하나에 쌍둥이처럼 집회가 두 개씩, 그것도 동시에 열리는 게 너는 바람직해 보여?
나는 부조리해 보이는데. 언제까지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면 어떻게 발전을 하지? 우리는 서로의
대립항이 되기 위해서 이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잖아. 우리가 가진 공통점은 왜 중요하지 않아?
10. 이건 우리 힘으로 안 되나 봐. 어쩌면 안 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형은은 말했다. 서로 가려는 방향이
전혀 다른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억지로 함께 가자면서 차이를
뭉개버리는 게 옳아? 우리는 자기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당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하자는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야. 자꾸 머리를 눌러 짜부라뜨리려는 손이 있는데 어떻게 그 손을 잡아?
11. 그들은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누며 아무런 보상도, 보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도 없이 아직 가보지 못한
어떤 시간과 장소들을 그려보았고 사람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들은 젊었고,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12.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 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가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너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13. 우린 승객이었을 뿐, 그동안 이 버스에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거겠지.
방향 하나하나, 신호 하나하나, 승객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14. 나는 아무 이름도 갖고 싶지 않고, 끼워달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단지, 표를 사는 법을 몰라서,
멀미가 너무 심해서,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아니면 그냥 길을 잃어서, 멍한 얼굴로 읽을 수 없는
노선표를 들여다보며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고 외로워서 그 사람들이 울고 있을 때, 다가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거야.
그 사람들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15.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기대를.
16. 머리에 둘둘 감긴 그 멍청한 붕대를 세연이 콱 당긴 순간부터, 그래서 눈앞에서 수많은 별들이 팍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지고, 입에서 악하고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온 그 순간부터, 진경은 이것이 아주 신기한
인연이라고, 이 바보 같은 아이를 어쩌면 평생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근거없는 예감을 품었었다.
키워드: 페미니즘, 여성인권, 연대, 이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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