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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92. 눈 밖에 난 자들-20.06.15~06.17

by 독서의 흔적 2020. 6. 17.

한국소설 눈 밖에 난 자들 종이책 성은영 아마존의 나비 ★★★★★

 

후기 '대한민국 사법부를 고발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를 성 착취 동영상 제작과 유포 방조죄로 고발한다"

이 마지막 구절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가.

소라넷, 다크웹, 버닝썬, 정준영, 주진모, 강남역 살인사건, N번방, 서울역 폭행사건 등.

하루가 멀다하고 포털을 가득 메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건만, 사법부의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에 금새 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초범이다.', '정신병 이력이 있다.', '술에 취해 우발적이었다.', '죽이려고 한 행동이 아니다.', '처벌하기엔 너무 젊다.'

'피해자 유족에게 끊임없이 사과하려 했다.', '반성의 여지가 보인다.', '돌아가서 월드컵 응원을 해야한다.'

말도 안되는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가해남성들 편에 선다.

그렇게 소라넷 운영자는 징역 4(이때 잡힌 운영자는 여성), 다크웹 손정우는 징역 16개월,

정준영은 징역 6(그마저도 항소심), N번방은 캘리 1, 그 외에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마저도 10대는 풀려났다.

서울역 폭행사건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이 두차례나 기각되었다.

(어느 것 하나 심각하지 않은 범죄가 없지만, 손정우의 경우는 아동성착취물 유통에 가담했기에 엄중하게 처벌해야 옳았다.

해당사이트 이용자 중 한 미국인의 경우 징역 70년에 보호관찰 10년이 선고되었다.)

 

그렇다면 여성이 가해자일 경우에는 어떨까.

홍대누드촬영사건.

가해자는 빠르게 구속되었고, 포토라인에 섰으며, 징역 10개월에 2500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남성제자들을 성폭행했다는 학원강사.

정의로운 판사님께서 1심에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심 진행과정에서야 피해자측 알리바이가 허구로 밝혀졌다.

피해자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시간의 병원진료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남성이다.

홍대사건 당시, 조사 및 판결을 이렇게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기사는 또 어찌나 많던지. 언론사가 열심히 일하는 곳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학원강사의 누명. 증거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10년을 선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그렇게 허술한 곳이었단 말인가. 눈 뜨고도 코 베이는 곳은 사실 법정이었단 말인가.

피해여성들이 제시했던 숱한 증거들과 증언을 신빙성이 없다’, ‘일관성이 없다.’,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며 피해자를 몰아붙이고 무시하던 사법부였다.

최종범 재판 당시 증거를 확인해야 한다.’ 며 성관계동영상을 재생했던 사법부였다.

모든 증거와 증언을 나노단위로 뜯어살피는 사법부가 이렇게 허술하다니.

이쯤되면 공정한 판결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그러니 우리나라 여성 중 어느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는가.

 

그래서 여성들이 나섰다.

<눈 밖에 난 자들>은 남성들을 제 손으로 단죄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귀랑'은 극도의 남성우월주의자(완전체 한국남자)이다.

이곳저곳에서 자기변호와 여성혐오의 말이 쏟아지는데, 작가님이 남자였던가 싶은 의문에 프로필을 수차례 확인했다.

나는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 남자들의 속마음을 접하고 싶지 않았고, 책장 내내 이어지길 원하지 않았다.

알고싶지도 않은 귀랑의 속마음을 반강제로 듣고있다보면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결국 입 밖으로 ㅅㅂ...를 내뱉고야 말았다.)

정자씨와 박꼭지의 지난한 삶을 보고서도 온갖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는 귀랑이 한심했다.

이 고통스러운 독서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두 여성, 유정자와 박꼭지 덕분이었다.

단언컨대 귀랑의 존재만 버텨낸다면 묘한 흥분이 뒤따르는 독서가 될 것이다.

 

귀랑은 정자씨(할머니)와 엄마, 두 여성으로 구성된 가정의 유일한 남성이었다.

귀한 아들, 귀한 손자라며 늘상 이쁨만 받던 그는 남 위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성인으로 자란다.

성희롱, 성추행, 강간모의, 왕따주도 갖은 여성혐오 범죄를 계획하고 일삼으면서 자란 그에게

여성이란 존재는 한낱 미물과도 같았으니, 정자씨와 엄마를 어떻게 대했는지야 물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런 귀랑에게 늘상 눈을 부라리고 말대답을 하는 박꼭지의 존재가 거슬렸다.

그는 친구 석태를 이용해 꼭지를 벌하고자 한다. 정말로 큰 범죄를 주도한 것이다.

꼭지는 이 모든 것을 귀랑이 주도했음을 알게 되자, 정자씨의 힘을 빌려 그를 벌하고자 한다.

하나 둘 꼭지가 몰래몰래 던져둔 먹이를 물다보니, 어느새 귀랑은 그들이 준비한 무대 아방궁에 갇혀버렸다.

도대체 아방궁은 무엇을 하는 공간이며,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귀랑의 서술과, ‘아방궁 이야기라는 카페의 게시글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카페라는 것이 꽤나 특이한데, 게시글에 정자씨가 겪은 온갖 남성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하나같이 악랄하고,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형적인 한국남성들이다.

달리 말하자면, 벌하고 싶어도 남성 모두가 그렇기에 처벌을 기대할 수 없는 눈 밖에 난 자들이다.

어찌나 현실반영적인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온갖 남자들의 이야기가 모여있다.

그런 자들을 벌하기 위한 아방궁이라니. 이렇게 환상적일수가!

곤경에 처해서도 끝까지 남 탓을 일삼는 귀랑을 보고있으면,

'그래, 그러니 아방궁이 필요한 것이다.‘며 합리화하게 된다.

귀랑이 반성하고 바뀌었다면 이 책은 메시지를 잃었을 것이다.

한치도 엇나감이 없이 꾸준하게 날뛰는 귀랑의 한결같음이 얼마나 한심하고도 현실적이던지...

여자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남자들을 잡는 여성이라니.(책 속 문장을 살짝 바꿔보았다.)

단언컨데, 박꼭지와 유정자는 최고로 능동적인 여성캐릭터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두 여성간의 연대는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사법부는 기대할 수 없으니, 누군가 나서서 벌해줬으면 싶다. 는 사건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런 우리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눈 밖에 난 자들>은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과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책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

더 이상 성별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는 판결은 보고싶지 않다.

이제는 사법부가 눈을 떴으면 한다. 더 이상 여성을 분노케 하지말라.

불필요한 가해자의 서사가 아닌,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공감하고 집중하는 사법부를 보고싶다.

우선은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것에서부터 그 첫걸음이 시작되었으면 한다.

 

+) 이런 류의 책을 읽고나면 언제나 분노에 휩싸여 후기를 쓰곤한다. 지금도 그러고 있단 뜻이다.

책을 읽을 때 늘 같은 문장을 두세번씩 읽곤 하는데,

이 책은 귀랑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보니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지 않더라.

덕분에 꽤나 속도감있게 읽은 편이었는데, 이 놈의 자기합리화와 여성혐오를 견딜 수가 없어서 끊어 읽다보니

완독하는데에 3일이나 걸려버렸다. 완독한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혐오로 똘똘뭉친 놈이다.

혐오의 절정은 한 등장인물의 이름인 '박꼭지' 이다.

'고추를 달고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다음 손주는 꼭 남자로 태어나야하니, 꼭다리(고추)라고 지어달라.'

는 할머니 덕분에 꼭다리의 표준어인 꼭지.라는 이름을 얻은 첫째손녀.

할머니의 이름도 언년이인데, 어떻게 손녀에게까지 그럴 수 있나 싶어서 읽는 내내 한숨만 푹푹 내쉬었던 부분이다.

(<경찰관 속으로>에서 언급되었던 강늡때기 할머니가 생각나서 더 속상했다.)

웬만하면 후기에선 비문도 욕설도 쓰지않으려하는데, 그럴 수 없었던 책...

귀랑.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 2020.07.06. 손정우 미국송환 불허.

사법부는 여성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많은 국가들이 다크웹 발견과 동시에 피해자 구출을 우선시 했다는데,

한국은 그 많은 피해자들의 생존여부조차 알려고하지 않았다.

손정우가 다크웹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44억원.

그리고 그 수익금으로 해당 재판에 변호사 7명을 선임했다고 한다.

아버지라는 작자는 '아들이 미국에 가면 밥도 잘 못먹을 것이고, 타국에서 힘들 것이다. 한국에서 처벌 받게 해달라.'

며 탄원서 및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리고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에서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 같은 범죄를 방지하는데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한다.

판결과 동시에 손정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고 하더라.

범죄자의 가족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판사 심정은 어떨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난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다시는 컴퓨터를 하지 못하게 막겠다' 고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구질구질하고 구역질이 난다.

애초에 큰 기대도 하지않았지만, N번방으로 떠들썩한 지금, 뭐라도 성의를 보이지 않을까했는데, 역시나였다.

<눈 밖에 난 자들> 속 아방궁은 픽션이어서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아방궁의 존재가 실존하길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라는 바이다.

여성들의 분노를, 실질적인 공포를 이제 누가 보상하고 지켜줄 것인가.

'국민'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음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1. 나는 버려지고도 오빠들이 죽었기 때문에 용케 살아남았고 분임의 딸은 오빠랑 같이 물에 빠졌기 때문에 죽었다.

임의 딸른 오빠들이 다 죽었기 때문에 혼자 살아남은 나와 대비가 되었다. 분임의 딸이 아들 대신 살아남았더라면

그녀의 삶이 훨씬 편해졌을 거라고 일러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2. 내가 그녀의 애간장을 녹이면서까지 굳이 간판을 정자네로 바꿔달았던 건 누구의 며느리나 아내가 아니라

유정자로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3.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아무나 미망인이라고 불리진 않는다. 오직 남편 잃은 여자만 죽음을 독촉당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반발심이 이는 호칭이었다. 나는 되도록 많은 남자와 통정하며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4. 꼭지도 알다시피 법이나 제도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아. 다른 건 다 변하는데 어째 젠더 문제만큼은 진화되질 않나 몰라.

남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법은 개나 줘버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해.

 

*책이 온통 귀랑의 서술로 진행되다보니 그의 되도않는 궤변에 줄을 그을 수 밖에 없었는데,

완독 후 확인해보니 그 수가 자그마치 15구절이었다. 그마저도 고르고 골라 정말 화나는 구간만 그었다는 사실...

 

키워드: 여성혐오범죄, n번방, 다크웹, 소라넷, 불법촬영, 성폭행, 남아선호사상, 여성연대 
꼬리(연결고리): 인생을 고르는 여자들

-가정폭력범 남편에게서 아내들을 구출하는,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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