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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83.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20.06.01

by 독서의 흔적 2020. 6. 3.

사회/여성문제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전자책 한국 여성의 전화 오월의 봄 ★★★★★

 

후기 '내(아내) 잘못이 아니라, 네(남편) 잘못이다.'

<아주 친밀한 폭력>이 가부장적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점인 '아내폭력'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이 책은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생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사소하지 않다는 말에는 이미 사소하다는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사소-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즉, 사소하지 않다=중대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 담론은 '사소'라는 말의 궤도를 벗어나야 한다." 정희진 선생님의 묵직한 서문으로 시작한다.

읽는동안 '홧병에 걸린다'는것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상상력의 한계치를 알게되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듣게될 것이고, 무엇을 각오하든 견디기 힘든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의 목소리에는 '내 잘못은 아닐까', '나만 더 잘하면 된다.' 라는 공통적인 생각이 담겨있다.

그들은 남편에게 더 헌신하고, 모든 집안일을 더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한다.

과연, 그러면 남편의 폭력이 끊길까? 아니다. 그들은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서 폭력을 가한다.

'너와 결혼해서 내 인생이 망했다.', '내 모든 문제는 너다.'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들로 아내를 짓밟는다.

이미 그들에게는 '아내를 때린다'는 행위 외에는 중요하지 않다. 

원인과 이유는 없다. 그저 아내를 소유물로 보기에 저지르는 행동들이다.

일찍이 국가는 '하늘같은 남편', '남편은 아내가 만드는 것',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가 산다.' 식의 말들로

돌봄노동을 아내에게 일임하였고, 가부장적 사회를 주도하였으며, 정상적인 가정만을 추구해왔다.

'아내폭력'을 용인하기 위해 다 차려진 밥상인데, 마다할 남편이 어디있겠는가?

이혼을 하자니, 사회의 눈길이 두렵고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던 피해자는 아이들을 놓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고,

가정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피해자는 아이들이 다칠새라 온몸으로 폭력을 받아낸다.

(이 모든 것을 시도조차 못하는 피해자도 다수이다.)

'남편 직장에 소문나면 안된다.', '아이들을 애비없는 자식으로 키울 생각이냐.'는 주변인들의 말은 또다른 폭력이 된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은 이 모든 상황을 악용해 더 심한 강도의 폭력을 가한다.

 

'아내폭력'의 피해자가 생존자로 살아가기 위한 첫 걸음은 '내 잘못이 아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잘못은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있다.

가해자들에게 아내 또한 사람이며, 부부는 한 몸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사실 그게 될 사람이면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

맞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고, 맞기 위해 결혼한 사람도 없다.

행복과 사랑을 바라며 선택한 결혼은 어쩌다 불행의 집합소가 되었을까.

정말 무서운 점은 '정신적인 문제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말들로 남편을 훈방조치하지만,

이들의 폭력은 '아내'를 타켓으로만 행해진다는 것이다.

'경찰이 왔더니 남편이 얌전해지더라', '사회에서는 번듯한 이미지로 통하더라'는 말은 이미 식상한 레퍼토리이다.

 

가정폭력은 두집 건너 한집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정상적인 가정에 집착하는 사회는 너무 많은 폭력을 숨기고 있다.

가정 내 구성원인 아내부터가 이미 평화롭지 못한데, 어디서 평화를 얻고 안정을 얻으려는 것일까.

왜 살려달라는 외침에 '그러다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아요. 자신있어요?', '남편이 때렸다는 증거있어요?'

'그냥 좋게 대화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라는 말이 뒤따르는 것일까.

이 사회는, 국가는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을 '정상적인 가정'으로 비추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있다.

곱게 포장된 가정이라는 이름 속에 곪아가는 아내들을 보지못(안)한채로.

우리 모두는 가정은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존재이며, 누군가에게는 유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왜' 맞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맞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아내폭력' 가해자에게는 더욱 강력한 처벌을, 그리고 생존자에게는 국가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생존자들은 말한다. "이런 쉼터가 있는지도, 이런 지원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원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니 도움받을 용기를 낸 사람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은 나 역시도 이렇게 구체적인 지원이 있는지 몰랐다.

모든 제도와 지원이 가정과 더욱 친밀해질 필요가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모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국가에 주어진 과제이다.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려면, 이 또한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더 없이 소중하다.

같은 여성을 위해 생존자 여덟명이 목소리를 모았다.

그들로서는 쉽지않은, 폭력을 다시 떠올려본다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디 이 책이 가부장적 사회라는 유리창을 균열내는 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고, 더 많은 사람이 생존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폭력이 시작된 시점부터, 그 가정은 (국가가 말하는)정상적인 가정의 범주에 들 수 없다.'

 

인상깊은 구절

1.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2. 모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통제다. 그 통제의 장소가 집 밖이면 사회적 충격이고,

집 안이면 사소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3. 근대 핵가족은 성별과 연령이 교차하는 위게적 제도다. 가정폭력은 근대 이전에도 빈번한 문화였지만

늑대, 여우, 토끼처럼 서로 덩치 차이가 크고 힘이 다른 이들이 함께 사는 곳에서, 폭력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구조다.

 

4. 가정폭력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사회 전반에 만연한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성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권력의 문제이고 이는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자행되어질 것임을 알게 되었다.

 

5. 가정폭력은 나를 '벌레'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어딘가에 아직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편견, 자녀문제, 경제문제' 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두려움은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 두려움만 극복한다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외쳐주고 싶다. 나는 이혼을 하고나서 드디어 사람답게 살게 되었다. 나의 영혼은 푸르게 자유로워졌다.

 

6. 산산이 부서져버린 유리조각이 빛을 받았을 때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는 그 글처럼, 나는 고통을

겪었지만 남은 인생이 유리조각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일 것을 믿는다.

 

7. 내 삶의 주인은 남편이나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나는 살아갈 것이다.

살아낼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피해자가 아니라 모든 일들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아름다운 생존자'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

 

8. 살아 있으므로 아픔과 고통을 이겨낸다. 살아 있다면 성장을 하게 마련이고, 성장한다는 것은 좀 더 완성된

인간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9. 가정은 폐쇄된 세계다. 가정을 '이해와 배려의 영역'으로 포장하면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을 감추고,

노동력 재생산을 가정의 기능으로 설명하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평가되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정'이라며 가정 속의 개인은 삭제한 결과다. 하여 가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실 (알면서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10.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상화하는 우리 사회에 어떻게 여성들이 저항하고 있는가에 대한

기록이자, 변화의 가능성 혹은 변화 그 자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필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로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넘쳐서 결국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키워드: 가정폭력, 아내폭력, 생존자
꼬리(연결고리): 아주 친밀한 폭력

- '아내폭력'의 개념과 그 실상은 어떠한지, 각종 자료들과 실제사례를 통해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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