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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77. 아주 친밀한 폭력-20.05.25~05.26

by 독서의 흔적 2020. 5. 27.

사회/여성문제 아주 친밀한 폭력 전자책 정희진 교양인 ★★★★★

 

후기 '이것은 '가정폭력'이 아니라 '아내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 앞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책을 만났다.

그래서 후기도 어떻게 써야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비문가득하고, 혼잡한 이 후기를 쓰는데에 두시간이 걸렸다.(실화임)

쓰고싶은 이야기가 한가득이지만, 다 쓰자면 한도끝도 없을 것 같아 대부분을 쳐냈다.

좋은 책을 만날때마다 '역시 어릴때부터 더 많은 글쓰기를 해야했어. 느낀점을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다'

같은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고 나선 기껏 써내려간 후기에 자괴감을 느끼지)

요즘 들어 소설이 아닌 이런 책들을 찾아다니는걸 보니, 배움에 대한 갈증이 계속해서 솟아나고 있나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책읽는 자들의 지적허영심이라고 하더이다. 

하고자하는 말이 있다면, 그 언어를 잘 정제해서 조리있게 전달하는 것이 1순위라는 것을 가르쳐준 책이었다.

 

서문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읽는 순간 이 책 쉽지않겠다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읽는 내내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고, 속이 메슥거렸다.

특히 구체적인 인터뷰들을 언급한 4, 5장을 읽을때 극에 달했다.
읽는 동안 사회가 아내폭력에 대해 어떤 반응들을 보였는지,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사례가 언급된 책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중 딱 두권만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 "진작에 탈출 안하고 뭐했냐. 자업자득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저자의 어머니는 지속적이고 강압적인 폭력때문에 저항 의지를 상실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겪은 고통의 크기를 섣불리 재단할 수 있는가. 왜 자식들의 손을 잡고 도망치지 않았냐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2. "손찌검하는 남자는 고쳐쓸 수 없다. 이혼해야 한다." -<인생을 고르는 여자들>
: 이혼 또는 도피를 선택한 아내와, 이를 도와준 여성은 결국 전남편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들은 행여나 남편이 찾아올새라 개명에, 이사간 주소도 철저히 비밀로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살해당한 이들이 여기서 무엇을 더 해야했을까. 


결국 이 모든 이 반응들은 '당신이 소극적으로 대처했기에 폭력이 벌어지는 것이다' 라는 말의 연장선이 된다.

이들의 행동이 결코 '폭력에 대한 동의'가 될 수 없음에도, 모두의 시선은 너무 쉽게 피해자를 향하곤 한다.
탈출이든, 이혼이든, 고소든 결국은 우리가 이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제 3자'이기에 쉽게 언급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수많은 사례가 이야기 했다. 결혼은 지옥이라고. 굳이 결혼한 너의 잘못도 크다.'라 말한다.

비혼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에도, 모든 화살은 기혼여성에게로 돌아간다. 

이는 결국 '결혼을 함으로써 가부장제 체제를 견고히 했다'는 말로 기혼여성을 향한 혐오로 변질된다.

결혼을 택하는 것도, 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의 자유인 것이지, 누군가를 탓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비약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피해자다운 태도' 가 아니었을까.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러게 왜 따라갔냐.'는 이유로 감형하는 수많은 성범죄 판례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늘 그렇지만, 2차가해를 하지 않으면서 온전하게 피해자를 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나아가, 아내폭력으로 인해 아내와 남편중 누가 사망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a.k.a 이범영프)>이 떠올랐다.
이 책의 초판은 2001년에 나왔으니, 최근에 나온 이범영프를 생각하면 세월이 훌쩍 흘렀음에도

부부폭력에 대한 처벌수위는 여전히 미미하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죽어라 때렸음에도 '죽이려고 때린것이 아니다'는 판결로 상해치사가 되고,

버티다 못해 이제는 살아보고자 칼을 들었음에도 '죽이려고 든 칼이다' 는 판결로 계획된 살인이 된다.

살아보고자 했던 몸부림은 '그러게 더 견뎌보지 그랬냐. 역시 니가 잘못이다.'라는 말로 더럽혀진다.

살려달라는 외침을 외면했던 관계기관들이 서로 책임전가하는 모습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인권을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 견고한 가부장적 사회의 틀은 우리가 깰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불안한 의문이 생겼다.

'제발 여성도 인간임을 잊지말아달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외쳐야하는

이 사회는, 세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명의 가치를 운운하며 '낙태'를 금지하는 나라는 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일까.

아내의 생존여부보다 가정유지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생명의 가치란 '어떤 생명'을 칭하는가.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묵살당하는 것이 가정이라면, 그것은 더이상 존속할 가치가 없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은 가정이 아닌, 부부 개인의 인권이 되어야 한다.

 

"여성에게 주어진 낡은 지도를 버리고 다른 세상을 그리며 걸음을 옮길 때,

그 여정 자체가 우리에게 새로운 지도가 될 것이다.

한번 이야기를 하고나면, 그다음의 우리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中)"
막막한 현실에 시도때도 없이 회의를 느끼지만,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정도로 미약하게나마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어본다.
(믿기지 않겠지만 많이 바뀌었다고 이수정선생님이 그러셨다..
)
나는 이 모든 작은 목소리가 모일 수 있는 광장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연대할 것이다.

들리지 않는다면 들릴때까지 외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 당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노라고"

당연한 것이 당연할 권리를 찾는 그날까지. 

 

읽고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이 책만큼은 읽어야만 한다싶은 책이 있다.
<아주 친밀한 폭력>은 힘든 내용을 견뎌내며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이런 책을 접하고 나면 늘 '그럼, 내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해 다른 책들로 시선을 돌린다.

책에서만 찾을 수 있는 답이 아닐것임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놓친 목소리를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려웠지만, 완독했다는 사실이 뿌듯할 만큼. 간만에 밑줄로 가득채운 독서였다.

 

인상깊은 구절

1. 중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맥락이다. '부부싸움'의 상황이 성별화된 문화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아내에 대한 폭력의 실체다. 남편의 폭력과 아내의 '폭력'을 같은 성격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적 폭력 개념이다.

 

2. 여성주의자는 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한 사람, 그 고통에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 피해자/운동가/연구자의

차이와 위계를 넘어 '당사자(actor)'로서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이다.

 

3. 계급의 재생산, 출산, 자녀 양육 등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가족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사실 많은

다양한 다른 가족 형태들을 배제하고 이성애적 핵가족만을 정상으로 설정한 가족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동성애 가족, 독신 가족은 출산하지 않는다.

 

4.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이 원래 의미인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아니라 가정에 대한 폭력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아내 폭력'에 대한 접근 방식은 주로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자'는

가족 유지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5. 나는 '아내 폭력'에 대한 가족 유지적 접근이 과연 '아내 폭력'문제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이다.

첫째, 여전히 여성을 가족 유지의 핵심적인 조재로 본다는 점에서, 둘째,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을 모성의 담당자와

남편의 성적 대상으로만 규정하는 남성 중심적 권력 구조에는 문제 제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셋째, 여성의 정체성을 사회적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가정적' 존재로 끊임없이 환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6. 그들의 고통은 절대적인 고통이다. 몸에 가해지는 아픔의 느낌은 보편적이어서, 우리가 흔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호할 때 쓰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든가 '네가 강하면 이겨낼 수 있다' 따위의 고통을 상대화하는 언어는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무기력하며 때론 아무 의미가 없다.

 

7.이처럼 인간의 고통 경험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존경받지만,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더럽다'고 추방되고 낙인찍힌다. '아내 폭력'은 인정되지 않는 고통, 믿을 수 없는 고통이다.

'정치적'이고 공적인 장에서 인정되는 고통과 달리 재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타자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8. 폭력은 권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 의식적인 인간 활동이자

계획된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을 잃었을 때 폭력이 발생한다기보다는 폭력에 의해 이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9. '아내 폭력'은 현재의 가족 제도와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성별 관계에 의한 여성 문제들 간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내 폭력'에 대한 질문은 (안 때릴 수도 있는데) '왜 때리는가'보다는,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10. 여성 폭력이 인간의 안전과 존엄을 공격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적 영역의 사소한 문제라는 인식은,

여성을 보편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구타 남편들이 '여자 하나 때린 걸 갖고 뭘 그러느냐',

'나는 사람을 친(때린) 것이 아니라 집사람을 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남성만을 보편적인 인간으로

인정하고 남성의 폭력을 방조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11. '아내 폭력'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다. 개인으로서,

사회적 시민으로서 여성은 남성에게 그렇게 당연하게 오랫동안 폭력을 당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여성이 결혼하면, 사회적 개인으로 인식되기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우선적으로 기대된다.

이에 반해 남성의 개인성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감은 비교적 일치되어 있다.

 

12. 그들의 폭력 부정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바, 생각하는 바 그대로이기 때문에

다른 문제로 치환하여 인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정당하기 때문에 굳이 합리'화', 정당'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폭력 부정은 방어기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인식 구조를 확실히 하는 일종의 공격방법이다.

 

13.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을 '어머니'와 '창녀'로 이분화해 왔는데, 이 사례는 '어머니'와 '창녀'가 서로 대립하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이분화는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의 가치를 모성과 섹슈얼리티로만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남성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기능이다.

 

14. 남편은 아내와 있을 때만 감정적이다. 그는 자신의 폭력 행위가 잠시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아내의 신고로 경찰이 집에 들이닥치자 갑자기 이성을 회복하고 '미란다 원칙(연행시 용의자 인권 보호 지침)'

운운하며 연행을 거부했다.

 

15.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면서도 '압축적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가 사회복지 비용을 최소화하고

그 짐을 가족 내 여성 노동으로 떠넘겼기 때문이다. 한국 가족 정책의 특징은 '가족을 통한' 복지 제도이고,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는 여성 노동에 의존한 복지 제도이다.

 

키워드: 가부장 사회, 아내 폭력, 가정 폭력, 부부폭력, 여성인권
꼬리(연결고리):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인생을 고르는 여자들

-상세한 언급은 후기에 있으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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