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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72.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20.05.22

by 독서의 흔적 2020. 5. 27.

한국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전자책 구병모 arte ★★★★★

 

후기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환상소설.

여기서 현실은 상무나 가정폭력범 같은 하이퍼리얼리즘적인 등장인물들&곤경에 처한 등장인물들이고 

비현실은 타투를 통해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화인의 샐러맨더. 운전기사의 파도. 작곡가의 표범. 타투이스트의 가려진 타투들. 시미의 별.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있는 타투들은 소명을 다해 사라졌고, 자그마한 흔적을 남겼다.

대신에 심장에 새겨진 상처를 '커버업' 해주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타투가 저를 지켜준 거에요. 하지만 누가 믿겠어요.'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타투가 아닌 그들의 작은 용기가, 속에 간직해온 작은 목소리가 그들을 지켜준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의 소원이 이런 형태로 이루어져야 했을지 의문이지만, 살아갈 힘을 주었다는데에 의미가 있다.

타투를 새긴 것이 충동적이든 아니든간에 자신을 지켜보고자했던 또 하나의 노력이었으리라.

 

<아가미>의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파과>의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에 이어서

<심장에 수놓는 이야기>의 "제가 바라는 건"에 이르기까지. 

이 한 문장을 위해서 달려왔구나싶은 구절을 또 만났다.

그제서야 한숨과 함께 눈물이 왈칵 흘러나오면서

곤이 헤엄치고 있을 파란 바다가, 조각이 걸어다니고 있을 밝은 햇살 아래가,

시미가 올려다보고 있을 별이 수놓인 하늘이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구병모 월드)

 

한국작가의 작품을 좇아본 것은 처음이기도 했고, 이런 경험도 처음인지라 퍽 낯설기도 하고 신기했다.

(발터뫼어스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하에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니 예외로 했다.)

'작은책'이지만 결코 작지않은, 쉽게 귀 기울이지 않았을 외로운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따스한' 책이었다.

지금껏 내가 만나본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은 끈질기게 들러붙는 고통 뒤에 찾아오는 밝은 햇살과,

차랍고 시린 틈새를 파고 들어오는 따스함이 있었다.

때로는 숨가쁜 독서 후에도 바로 이어서 읽을 책을 찾아 헤매는데,
오늘의 독서는 이걸로 충분히 차고 넘친다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꼈다.

 

인상깊은 구절

1. "언제가 됐든 사라지니까요."

그것은 아마도 육신에 관한 이야기. 필멸에 관한 이야기. 아무리 영원해 보이는 피부 위의 흔적이라도 죽음까지

봉인할 수는 없으니. 그런 면에서 문신이란 아이러니한 작품이었다. 평생 남는다는 것도 시쳇말이나 다름없어져서,

마음이 바뀐다면 레이저나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인위적으로 없애는 일도 지금은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고 들었고.

 

2. 화인은 외모가 좀 화려할 뿐 발랑 까지지 않았고 발랑 까졌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정세대의 주관적인 준거

틀이며 설령 발랑 까진 것이 사실이라 한들 그것은 이 불행한 사태와 무관한 일인데, 상무가 옆에서 쏘삭여버리면

그것이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사건과 본인의 개성 사이에 관계가 없더라고 있게 될 터였다.

 

3. 축복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 그것을 말한 사람의 내면에서 총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실제의 축복이 달아나거나 가치가 감소하지도 않으니까.

 

4. 일상의 톱니바퀴는 여전히 지루하게 잘만 돌아갔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을 지켜준다는 행위가 반드시 누군가를

해함으로써 완성되는 게 아니라, 다만 그 사람을 지지하는 버팀목 같은 것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5. 세상의 어떤 당위나 도리나 윤리도 모성을 자연의 순리로 강제할 수 없었고 이미 완전한 타인들을 교착시킬 수 없었다.

 

6. 충동과 우연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실제로 그것들이 자연이며 우주며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생각 많은 것도 일관성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7.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8. 시미는 앞으로의 인생에 지금처럼 충동이 자신의 온몸을 구성 또는 대체할 정도로 부피가 커질 날이 다시 있을까

생각했다.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9. 우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 저랬을까 싶을 만큼 가차 없이 부서진 별의 조각들은 하늘로 넓게 퍼져나갔다.

한 점 한 점이 신의 바늘로 놓은 흰 자수 같았다.

 

10.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키워드: 타투, 소원, 샐러맨더, 별,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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