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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76. 늙은 소녀들의 기도-20.11.03~11.05

by 독서의 흔적 2020. 11. 8.

한국소설 늙은 소녀들의
기도
전자책 이경희 폭스코너 ★★★★☆

 

후기 '상처 가득한 손으로 연고를 덧대어 발라주는 여성들의 연대'

미군기지촌 여성, 가정폭력 피해자인 주인공과 엄마, 성폭행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 '위안부' 피해 생존자.

제국과 전쟁, 국가와 가부장제가 남긴 신체적, 정신적 폭력의 잔재와 맞서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

"나는 나를 잃어버린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땅에 가 당당하게 사는 것이 놈들에게 복수하는 거다"는 민자씨의 단단한 목소리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듯하다.

상처 가득한 손으로 서로에게 연고를 덧대어 발라주는 여성들의 연대는 언제 읽어도 가슴 속 불꽃이 일렁이게 한다.

현실에서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위안부' 문제라 소설에서 해결가능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재벌 2세인데다 능력도 출중한 연하 남성이 주된 조력자이며, 타래를 풀어나가는 중심인물이라는 점은 뭐랄까 좀...

내가 기대한 메시지와 자꾸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하림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걸까.

극우집단을 향해 당당히 욕을 하고, 변해버린 선배를 향해 직설을 날리는  하림이지만,

정작 사건 해결의 중심부에는 남성이 있었다. 미묘한 기류의 애정이 있었다.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은 하림과

'당당한 삶'을 살기위해 떠나는 민자의 극명한 대비.

다양한 여성상을 그리기 위한 작가의 의도된 연출이었을까.

더불어,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장면을 볼 수 없었기에 미련이 남는다.

이후는 현실, 그러니까 우리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리라 생각한다.

보고싶은 미래가 있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 가야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늙은 소녀들의 기도>는 민자씨의 '그렇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민자씨의 목소리부터 떠오르는 것은, 내가 늘 그리던 모습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일까.

"전쟁과 폭력을 비판하고 평화를 실천하는 세상 모든 여성들의 힘으로 해내자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떤 회유와 협박을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칼자루를 쥐여주는 일은 만들지 말자고 했다."

폭력에 공감하고, 연대하여 맞서싸우는 모든 여성에게 존경을 표한다.

 

+) 과거의 잔재에 시달리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지은 제목이겠지만, 늙은 '소녀'라는 표현은 볼 때마다 기괴하게 느껴진다.

피해 당사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그 자리에 못박아두는 것만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그렇다고해서 더 나은 제목이 생각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고... 파고들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위안부' 문제인듯 하다.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윤금실 입니다. 나는 역사의 산증인 윤금실입니다.'는 <한 명>속 외침이 문득 생각나는 순간.

 

 

인상깊은 구절

1.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도 여자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체념이 비명을 지르며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도망치게 만들었다. 나는 잘못이 없었다. 잘못은 그녀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상대한 여자에게 있었다. 폭력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는 언제나 정의가 아니라 비겁한 쪽으로 기울어져왔던 것이다.

 

2.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진짜 나를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었다. 분명 무력으로 당한 것이라 나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되는데, 정신이 분열을 일으키면서 나를 사람이 아닌 개돼지로 느끼게 하는 게지. 아무리 닦고 씻어도 내 안의 구린내가 사라지지 않아서 사람들 근처에 갈 수도 없고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더라. 그렇게 무너져버린 내가 누구를 붙들고 칼을 갈아달라고 할 수 있겠니.

 

3. 일간지를 통해 일본인들의 기생관광 기사를 읽은 적이 있지. 일본 교통공사가 발행하는 관광안내서에는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나라다'라는 제목을 버젓이 달고 기생관광을 부추기기도 했어. 당시 일본은 경기가 좋아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오십만 명 이상씩 급증하면서 일본 남자들에게 기생관광은 매력적인 상품이었단다. 여대생들이 공항에 모여 피켓을 들고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정작 정권의 실세들은 이 또한 외화벌이의 한 축이라는 개념으로 묵인하는 작태를 보였지 뭐냐.

 

4. 여자의 노동을 순노동으로서의 기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이라는 서비스 상품으로 인식하고 취급했다는 사실에 놀라움보다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녀와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여자들이 있을 것이었다.

 

5. 다 묻고 조용히 눈 감으려고 했어요...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겠지요. 그런데 민자가 그 또한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나만 살다 가는 세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나만 입 다물고 살다 죽으면 끝인 세상이 아니라고,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라고 했어요.

 

6. 너도 여자로 살면서 느꼈을 거야. 하느님이 여자를 얼마나 불리하게 만들어놨는지. 다른 생물들은 제 편리한 대로 잘도 바꾸며 사는데, 여자는 태생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거 너도 알 거다.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이제 와서 다시 만들어내라고 할 수도 없고. 우리가 방법을 찾아가며 살 수밖에.

 

7. 나는 붉은 수첩을 열었다 .빛바랜 글자들이 나를 보았다.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 기다린 글자들, 슬픈 눈동자 같았다. 어디서부터, 아니 누구부터 어떻게 눈을 맞춰야 할지 몰라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8. 그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닐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에 그는 너무 어렸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어렸지만, 어린 그가 저지른 국가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본능적 폭력을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용서는 당한 사람이 마침내 평화로움을 느낄 때 성립되는 것이었다. 폭력의 가해자가 구할 수 있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진실을 죽을 힘을 다해 온몸으로 비는 것뿐이었다.

 

9. 용서란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빌 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관용이고 은혜야. 용서라는 말은 가해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니지.

 

10.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전쟁인 줄 알았다. 내가 맞서야 할 전쟁은 돈과 사랑과 일자리라고만 생각다.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잊히고 있는 역사 속의 전쟁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라고만 생각했다. 오늘이 역사이고 내일도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잊은 과거는 있어도 사라진 과거는 없다는 걸. 순이 씨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 땅을 뚫고 올라오기까지 혹독한 겨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11. 돈과 세월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더라. 자존심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찢어지고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사는 게 항상 굴욕스러웠다. 생살은 도려내면 새살이 돋지만 자존심은 그렇지 않지.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풀어야 한단다.

 

 

키워드: '위안부', 미군기지촌, 이주노동자, 가정폭력, 여성, 연대, 용서와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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