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 이계리 판타지아 | 전자책 | 이시우 | 황금가지 | ★★★★★ |
후기 '귀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전통과 전설과 신문물이 적절히 뒤섞인 한국(시골)판타지.
생생한 묘사와 빠른 전개에 쉴 새 없이 읽은 작품.
"아따 술술 넘어간다" 하고 마지막 장을 덮고보니 <이화령> 작가님이었다. (사이클을 타는 듯한 아슬아슬하고 엄청난 이 속도감)
호기심, 자만, 반항심, 인애로 하지 말라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주인공(미호)이 세상을 위험에서 구하는 이야기.
강, 저수지, 산, 늪, 시골은 특유의 분위기를 기대하게 하는 한갓진 장소들이건만, 소설 속 이계리는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돼지 얼굴이 달린 늑대, 원숭이 얼굴이 달린 개, 뒤집힌 얼굴에 네 팔·다리가 달린 거미 등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괴이를 상상하다 보면, '아, 역시 시골살이는 녹록잖은 것이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 띠지의 "살기좋은 우리마을 이계리로 놀러 오세요!"는 먹잇감을 유인하기 위해 괴이가 만든 함정이다.
그러니까 귀촌은 활과 칼 정도는 수족과 같이 다룰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아님)
작중 주된 서사를 이끄는 것은 여성이다.
괴이는 두려움과 기도, 경외를 먹고 자라나 인간을 공격하거나, 인간과 공존하거나,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하는 이형의 존재다.
작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1인 가구 여성(미호), 국제결혼 후 각종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주 여성(거미),
스토킹에 시달리는 여성(세연) 등 현대사회의 암(暗)적인 문제를 괴이를 통해 부각시킨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도, 이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여성이다. 문학에서 흔히 소비되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탈피한다.
(미호는 끊임없이 ‘내 집이고, 내 사람이야’를 외친다. 넘어지고, 다치고, 깨지더라도 사건의 중심에 두발로 단단히 버티고 서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답답하다고 하던데, 하지 말라는 것만 쏙쏙 골라서 하는 미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모름지기 하지 말라는 것만 하고싶은 법이다. 이를 증명하는 공포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 칼 쓰는 할머니(귀녀)와 활 쏘는 주인공(미호)이다.
등산복을 입고 산을 타며, 온갖 괴이를 무찌르는 강인하고 입체적인 두 여성이 그저 반갑다.
나긋나긋하기보다 각종 분노 표출에 능한 미호, 힘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귀녀.
세대를 넘나드는 두사람의 연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읽다보면 오싹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과 정신없이 싸운 뒤엔 각자의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후련함, 씁쓸함과 함께.
두려움 혹은 경외 혹은 후련함.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 괴이를 만들어 낼까. 이야기들의 이야기.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지만, 때로는 여백이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에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아니, 사실은 많이 아쉽다. 조풍, 도철, 포뢰의 이름은 용생구자(龍生九子)에서 가져온듯 한데, 나머지 형제의 서사도 궁금하다.
더 읽고싶다 정말로. 흑막은 사실 고양이였다(아님) 이런식으로 끝나면 아니됩니다... 읽지못한 이야기가 더 읽고싶어요....
언젠가 이계리 판타지아vol.2가 나오리라 믿어봅니다.
+) 투닥거리는 미호와 조풍을 보고있으면 가영이와 이누야샤가 절로 생각나는 것이다... (그럼 귀녀가 금강이 되는 것인가)
+) 안은영 재밌게 본 사람에게 추천한다기에 읽었는데, 아-무서워요!! 세연&포뢰 이야기는 캄캄한 방에서 읽다가 숨 멎을 뻔...
키워드: 괴이, 이계리, 귀촌, 이야기, 포뢰, 도철, 조풍, 여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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