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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45.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20.09.12~09.14

by 독서의 흔적 2020. 9. 18.

출판/편집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
종이책 노세 나쓰코
마쓰오카 고다이
야하기 다몬
정영희 남해의봄날 ★★★★★

 

후기 '작게 존재하는 타라북스가 만든 큰 물결'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우선가치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출판사가 있다.

인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보고자 1995년에 설립된, 세계인이 보는 그림책을 만드는 출판사 타라북스 이야기이다.

자본이 아닌, 책의 질과 삶의 질을 위해 작게 존재하기를 택한 타라북스. (그야말로 워라밸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

 

타라북스의 책을 구매하려면 평균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일반적인 해답이지만, 타라북스는 천천히 가기를 택했다.

제지-편집-인쇄-제본-포장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직접 주도하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많이 찍을 수 있지만, 그러면 질이 떨어진다.",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잔업을 하면 돈이 생기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장을 아무렇게나 뒤섞고 엮은 '정크'책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가운데, 타라북스의 '슬로우'책은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분히 친환경적이고, 예술적이며, 소시민적이다.

친환경 - 면섬유 재활용 / 제지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재활용 / 모아둔 파본은 노트표지로 재활용

예   술 - 책 한 권을 완성시키기 위해 찍고-말리는 공정(실크스크린)을 80회 이상 진행 / 손으로 엮는 제본 / 

            종이의 물성을 넘나드는 과감한 시도 / 소수민족 예술가들과 협업해서 다양한 전통을 기록으로 남김

소시민 - 실크스크린과 오프셋 인쇄(핸드메이드와 페이퍼백)를 적재적소에 활용, 전계층의 사람이 책을 접할 수 있게 함.

 

눈 앞의 이익을 좇다 길을 잃고 마는 세상에서 25년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책을 향한 진실된 마음, 옳다고 믿는 것을 쭉 밀고나가는 뚝심, 사각지대까지 닿아있는 넓은 시각, 유연한 사고.

이 모든 것이 한데 얽혀서 타라북스를 지탱하고 있다.

만들고자하는 책을 위해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작게 존재하기'를 택한 출판사.

타라북스라면 빈부격차가 극심한 계급 중심의 인도에 큰 물결을 가져올 것만 같다. 아니, 확신한다.

쉽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타라북스의 행보가 기대된다.

책을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 타라북스의 모든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이게 가능한 것은 인도라서가 아닐까...하는 생각.

요가의 나라, 차분함의 나라, 화가 없는 나라. 쉽게 흘려보내곤 하는 일상에 대한 존중이 물씬 느껴진다.

 

+) 타라북스 북메이킹 영상. 각 공정을 진행하는 차분한 손 끝에서 책을 향한 올곧은 마음이 느껴진다.

https://youtu.be/KZFWtvvgZYo

 

인상깊은 구절

1. 지금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다르다'는 것은 때로는 과격하고 이질적이며 상식을 깨부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다르다'는 것은 각각의 문화가 그러하듯 대등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대를 넘어 이어져야 하는 것들이지요.

'다름'은 두려워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하고 칭찬해야 할 대상입니다.

 

2. 나는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 이질적인 미지의 것들에 대해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좋으면 좋다고 내 의사를 드러낼 수 있는가.

 

3. 타라북스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안다. 그들의 '다름'을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우리들의 상식'으로 서투르게

번역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납득이 갈 때까지 대화를 거듭하는 것. 이것이 타라북스가 책을 만들 때의 기본이다.

 

4. 모든 것이 아무리 빠르고 편리해진다 하더라도 거기서 절약된 시간이 나의 여유로운 한때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현실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금세 또 휩쓸린다. 어쩌면 그래서 더 우리는, 느긋한 시간이 흐르는

타라북스의 핸드메이드 책과 그 세계에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5. 타라북스는 스스로 '작게 존재한다'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예정된 책이 늦어지거나 출판을 못 하더라도

타라북스는 그에 안달하지 않는다. 물론 실망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누가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규모를 확대하면 타라북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출판사다. 그러나 타라북스에게 책이란,

손에 쥘 수 있는 물리적인 형태로 남는 것이자 누군가의 가슴에 잊히지 않는 기적으로 남는 존재다.

타라북스가 특별한 까닭은 누군가가 손에 든 자신들의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다는 '책의 힘'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매일, 그리고 성실히 자신들의 일을 해 나가기 때문이다.

 

6. 물론 그들을 기계처럼 사용할 수도 있어요. 합리성이나 시간의 대가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그렇게 하고 싶다면

인간 대신 기계를 쓰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종이를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이만큼의 인원, 이만큼의 속도로도 충분합니다. 다들 편히 낮잠을 잘 수 있는 그런 환경이어야만 하는 거지요.

 

7. '조금 더 찍어 줄 수 없느냐'고 했을 때 '더 많이 찍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돈이야 벌겠지만 질은 떨어집니다.

책을 찍어내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입니다.

 

8. '출판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죠. 출판물은 예술가나 저자의 창의성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지 '내가 좋아하느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예술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작품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형태는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출판이며, 책 만들기입니다.

 

9. 독자가 책을 읽다가 해설이 필요하다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책 속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어야 하죠.

가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세한 말로 설명하는 예술가가 있는데, 책은 그 자체로도 세상에 날갯짓하는 존재입니다.

작가가 매번 옆에 붙어서 설명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책 스스로가 모든 걸 말해 주는, 그런 책이어야 합니다.

 

키워드: 책, 출판, 타라북스, 다름,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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