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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21. 대멸종-20.08.10~08.11

by 독서의 흔적 2020. 8. 12.

한국소설 대멸종 전자책 시아란, 심너울
범유진, 해도연
강유리
안전가옥 ★★★★★

 

후기 '인류 대멸종의 혼잡하고도 황홀한 꽃다발'

뭐지 이 고퀄리티 앤솔로지는?

그러니까 이렇게 재밌는 작품들이 잔뜩 투고되었다는 거지요?

진정한 승자인 심사위원단들 너무 부럽다... 진심으로...

"플로리스트가 된 기분으로 작품을 고르고 책을 만들었습니다. 꽃다발의 주인은 지금 이 책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이죠."

아뿔싸, 인류 대멸종의 혼잡하고도 황홀한(?) 꽃다발을 받아버렸다.

믿고보는 심너울, 해도연 작가님에 처음 만나보는 시아란, 범유진, 강유리 작가님까지.

작가 라인업부터 화려했는데, 그땐 미처 몰랐죠. 이 독서가 날 망치러 온 구원자였단걸....

 

지구의 대멸종은 저승의 대멸종으로 이어진다는 엄청난 설정에 놀라게했던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우주 방사선의 강력한 유입으로 전세계적으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수용한계를 넘어설만큼의 대량의 망자들로 인해 체계적으로 운영되던 명계(일종의 저승)가 일순간 혼란스러워 진다.

지구가 멸망하면 저승도 멸망하는게 아닌가?’

위기의식을 느낀 명계는 각 분야의 전문가였던 망자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후손들이 볼 수 있게 저승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면, 지구가 회복됨과 동시에 저승도 회복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대규모 기록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모든 저승을 통틀어, 사망 후에도 독보적이던 한국인의 근성에 혀를 내둘렀다.

서로의 종교나 국적에 따라 도착하는 저승이 다르다는 점이 재밌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어서도 한민족(?)이 될 수 없는거구나. 참으로 아쉽다.

 

지극히 현실적인 동시에 초현실적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믿고보는 심너울 작가님. 일전에 후기쓰면서 언급했지만, 정말 생활밀착형 SF에 최적화된 작가이다.

멸종이라는 키워드 없이도 충분히 재밌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게임개발자들은 신이 된 기분을 느낀다 이거지요...?

지구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용량을 확보하는 게임개발자라니, 5차 산업에 걸맞는 원격히어로 그자체다.

내용과 별개로 도대체 버그를 발견하려고 기를 쓰는 플레이어들은 뭐하는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65,536번 점프하면 서버가 터지는데, 그걸 발견한 유저가 하루종일 점프를 시도했을 그 사실자체가 오싹한 것이다.

소설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현실에도 그런 악질플레이어가 있다는 점이 문제인데,

이들은 게임 속에서 자신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재미추구인 것일까.

어찌됐든 상당히 악질적인 행동이고, 그들의 심리는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다.

 

6번째 대멸종을 막기위한 인류멸종은 대찬성이지만 뒷맛이 지독하게 쓰던 <선택의 아이>

이 작품은 읽으면서 몇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가나가 처한 현실이 너무 암울해서,

그리고 그 결말은 더 암울해서 한차례 울음을 쏟아냈다.

고래와 대화가 가능한 최후의 아이라는 설정 그 자체는 아름답고 신비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상황들이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잔혹하고 차갑기 그지없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비단 소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루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애니메이션 <노아의 방주 : 남겨진 녀석들>에서 대홍수가 일어나도 바다생물들은 방주에 타지 않고도 살아남는 모습을 보았다.

인류대멸종이 일어난다해도 가나 일행의 안전은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안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모든 비극을 내가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다.

감정을 좀먹는 독서에 지쳐서 장르소설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분노를 삭히기 힘든 작품을 만났다.

노아의 방주는 인간이 만든게 아니라 실은 바닷 속 선조가 만든 것이었다는 고래의 지적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모든 설화와 전설은 지극히 인간 위주로 만들어졌구나싶어서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언제나 부끄러움은 읽는자의 몫이다.

 

지구와 PIN이라는 시스템, 그리고 우울증을 한데 엮어놓은 <우주탐사선 베르티아>

과장하나 안보태고 지구 멸종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 깜짝 놀랐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도달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길래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싶어서 찾아보다가 납득했다.

, 이런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인재로군.

우주 중심으로 흘러들어오는 대량의 정보로 인해 어느샌가 인격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라던지,

정보를 해석하다가 우주 상에 존재하는 생명이라고는 자신 밖에 없음을 깨닫고는 우울증에 걸려버린 지구라던지,

진실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몇몇이라던지.

평범한 제목에 그렇지 못한 내용 덕분에 몇 번이나 얼얼하게 뒷통수를 맞았다.

전문가가 자기분야에서 전력을 다하면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이세계의 불행한 존재가 불러온 재앙 <달을 불렀어, 귀를 기울여 줘>

거울로 비춘 듯 한 마계와 인간계.

인간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해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마계의 달이 대신하게 된다면?

다섯 작품 중 유일하게 이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덕분에 갖은 상상력을 쥐어짜내며 읽었다.

지구에 달이 다가온다는 어느정도 상상이 가능한 상황을

마계에 달이 다가온다는 얼핏봐도 상상하기 힘든 상황으로 살짝 비틀었다.

단 하나 공통점은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것.

무식한 자가 야망을 갖게되면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단언했지만, 마력이 미미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따돌림을 당하던 마빈을 생각하면 왠지 측은하게 느껴진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통쾌한 복수가 되었다.

하지만 본인 또한 멸종을 피할 수 없으니, '복수는 대상과 본인 모두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증한 셈이다.    

 

다섯작품 모두 최고였다.

이미 멸종한 지구, 멸종해가는 지구, 멸종에서 지켜내야하는 지구. 일명 멸종 3단계.

점프의 횟수&선택의 아이는 책끝툰이 있어서 찾아봤는데,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선택의 아이는 오히려 툰 쪽이 더 선명하게 참혹하기도 했고... 나머지 세 작품도 언젠가 툰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독자의 독서경험을 상상해서 배치'한 점이 탁월했다.

저승-한국-캄보디아-우주-이세계로 점차 세계가 확장되어가는 것조차 지극히 장르소설다웠다.

안전가옥 앤솔로지는 처음이었는데, 이정도 퀄리티가 보장된다면 앞으로 믿고봐도 될 듯하다.

한국문학에 지친마음을 한국장르소설이 다독여준다. 어쨌거나 여전히 책을 통해 위로받는 중이다.

 

인상적인 구절

1. 고통받아야 할 영혼을 왜 굳이 축생도로 보내겠어요? 그런 영혼은 인간계로 보내는 편이 낫죠.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짓을 많이 하는데.

 

2. 신이 개발자일 거라는 생각은 못 했고, 개발자가 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개발자는 뭘 해도 개발자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나는 돌아섰다.

 

3. 이 세상의 신이 코딩을 더럽게 해 놓은 초보자 같다는 생각을 하니 웃겼다. 어쩌면 이 세상이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습작일 수도 있겠다. 아, 그러면 많은 것이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세상에는 웃음보다 눈물이

많은지, 왜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삐걱삐걱거리는지, 어째서 그렇게 삐걱삐걱거리면서도 세상이 어찌어찌 돌아가는지.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한 번 낄낄낄 웃었다.

 

4. 나는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운석이나 지구 온난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렸다.

우리 종의 생존은 신의 어설픔을 눈치챈 몇몇 프로그래머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5. 노아의 방주. 사람들이 꾸며 낸 이야기는 참 파렴치하더라. 사람이 배를 만들고 동물들을 태워 살렸다니.

배 따위는 없었어. 방주를 만든 것도, 그곳에 사람을 태운 것도 모두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이었지.

그들은 선조들의 공을 오로지 인류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때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그들이 다음 멸망을 몰고 올 것임을.

 

키워드: 명계, 개발자, 버그, 돌고래, 노아의 방주, 여섯번째대멸종, PIN시스템, 우울증, 마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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