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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서기록

105.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20.07.04~07.05

by 독서의 흔적 2020. 7. 5.

한국소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종이책 심너울 아작 ★★★★★

 

후기 '생활밀착형 SF. 어디에나 있을법한 이야기'

일명 꼰대노노.

전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도 그랬지만, 작가님은 '생활밀착형SF' 가 특기인듯 하다.

현실 여기저기에 있을 법한 소재에 재미와 흥미라는 양념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뿌린다.

재밌는 사람은 글에서도 재미가 묻어난다. 그리고 그게 심너울 작가님이다.
예판 당시 표지를 보고 '왜 물고기가 피 눈물을 흘리나'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에어팟이었다.

표제작을 읽어보면 에어팟이 붉은 색상인 이유가 다 있다.

소설 속 메시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표지이다. 상반기 '올해의 표지상' 드립니다.
단편집을 읽다보면 장편으로 만나고싶은 작품이 한두개쯤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단편 9개가 최고의 만족감을 준다

 

1. 초광속 통신의 발명
우리는 퇴근과 동시에 다음날 출근을 걱정하며,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은 그 퇴근하고 싶다는 감정이 미래에서 과거로 거슬러 온 것이라면?

가설과 함께 연구가 시작되고, 이것은 초광속 통신 'salyojo 프로토콜'의 기본 원리가 된다.

한국은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고통받는 직장인이 많았기에, 초광속 통신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복지국가들은 이 기술에서 뒤쳐졌다는 아이러니가 최고의 웃음포인트.
대학원생의 실험이었기에, 실질적인 수혜자는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지독히 현실적이라 쓴 웃음이 나왔다.
직장인과 대학원생의 애환이 녹아있다.

 

2.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인센티브를 받기위해 결성된 동아리 'SF클럽'
사내 동아리 중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내자 부회장이 관심을 보인다.

어느새 부회장은 SF클럽의 명예부원이 되어 이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진다.

그의 관심은 'SF 속 기술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가'이다.

만남을 지속해나가던 중 동아리 회장 이수현이 취기에 휩쓸려 실언을 한다.

건드려선 안되는 부회장의 깊은 곳을 찔러댄 것이다.

동아리는 풍비박산, 부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실언을 바탕으로 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나 뭐라나.
이 단편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스쿠스=모 기업, 라이벌=모 외국기업을 떠올릴 것이다.

작가는 순전히 우연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것 또한 우연이라 칭하도록 하겠다.

떠오르는 대로 상상하며 읽다보면 절로 소름이 돋는다.

 

3.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한때 떠들썩했던 '중년남성 1인가구 실태조사'를 소재로 한 작품.

당시 '중년 남성은 여성과 달리 집안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밥 챙겨먹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성욕구 해소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답변이 공개되어 큰 이슈가 되었다.

작품 속 여가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유쾌하게 제시한다.

제목부터 해결책까지 완벽한 쿵짝을 이르는 작품.

여성독자들은 나처럼 깔깔거리면서 읽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그럴거면 떼라'를 실천으로 옮기는, 현실에선 볼 수 없을 장면으로 대리만족 시켜주는 걸작이다.

 

4.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학생 수 보다 선생님 수가 더 많은 배추초등학교에 '도우미 안드로이드' 튜비가 배치된다.

친구가 없는 아이에게 단답형 안드로이드가 도움이 될 것인가.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튜비에 빠르게 적응한다.

"저도 쟤가 하는 말만 하는거 알고 있어요." 아이들은 늘 어른의 기대를 능가한다.

사람과 기계의 경계를 나누는 틈에서 아이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사람이 아닌 것에서 사람을 애써 발견하려고 하는 게 사람의 중요한 특성인 것 같다."

'소나무 같은 사람' '바다같은 사람' 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은 생각보다 다양한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5.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젊은 시절 한 할머니를 보고 '나는 저렇게 추하게 늙지 않을 것이다." 했던 사람이

어느새 늙어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추함과 그렇지 않음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늙는다는 것은 '정보사회'의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뜻이다.

무엇을 하든 젊은 사람의 습득력과 사회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라떼는 말이야'는 어른을 비하할때 쓰는 밈이 되었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늙는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는 젊어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은 저 사람이 꼰대이고, 추해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곧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꼰대와 추함.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예상했던 결말이고, 예상만큼 슬프다.

소설 속 일화로 끝나지 않을, 현실과 다를 바 없기에 지독하게 슬픈 표제작이다.

 

6. 감정을 감정하기
흔히들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의 유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부 뇌 기능을 잃어서 감정을 느낄 수 없게된다면 그는 안드로이드가 되는 것일까?
전자뇌를 달고 난 후 감정을 느끼게 된 주인공은 안드로이드일까 사람일까?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칭호에 너무 큰 무게감을 두는 것 같아"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각종 차별과 혐오주의자들의 양상을 엿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7. 한 터럭만이라도
읽으면서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수록작 <최고의 가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최고의 지성을 지녔던 용 '이스켄데룬'과 인간과

비등한 지성을 지닌 회색앵무새 '티렉스'의 상반되는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저 사람이 정말 권리 운운하면 왜 굳이 널 먼저 찾아갔겠어? 나랑 이야기했겠지!" 라는 티렉스의 한마디에

동물해방을 인간의 시점에서만 해석하지 않았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단언컨데, "내 발가락 때나 먹어라, 멍청이들아!"는 작품 속 최고의 대사다.

천재 앵무새가 선택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8. 거인의 별
이산화 작가의 단편 <희박한 환각>이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우주에 떠있는 얼음으로 가득한 위성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데 그 별이 사실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별이 내뿜는 물기둥과 얼음조각이 온 우주를 수놓는다면?

끌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요구한다.

 

9.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
태아의 세포를 조작하여 세포의 노화를 멈추고, 불멸의 삶을 얻게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노화하는 이전세대는 선택적 기술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불멸의 삶을 얻게 된 동생과 그렇지 못한 언니의 사이에 기나긴 단절의 시간이 흐른다.

불멸은 쉽게 언급되는 소재이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는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고, 작가는 이를 '선택받지 못한 자'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이들이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왠지 <월E>의 승선객이 떠오른다.

불멸의 삶을 사는 사람의 시간도, 그렇지 못한 사람의 시간도 놓치지 않은 따스한 작품이다.

 

작가노트를 읽고나면 작가가 세상을 얼마나 다양한 시선에서 보는지, 따스하게 보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단편선이다.

<정적>에서 느낀 따스함이 올곧게 유지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단편선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장편도 좋지만 단편이요. 꼭이요.

 

+) 작가님 트윗에서 에세이 계약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떡 없는 부대찌개는 햄 없는 부대찌개와 동급으로 생각한다.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에서 떡 골라내는거 너무 슬펐다... 그냥 그렇다구요...

 

+) 덕후의 가슴을 찌르는 명문장

"덕질에 생산적인 이유가 어딨어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지! 젠

장, 제발 취미에서 생산성 좀 찾지 마. 휴식은 휴식답게 하고 싶어!"

올해의 맞는 말 상 드립니다

 

인상깊은 구절

1. 왼쪽 귀의 위쪽이 조금 잘려나갔다는 것은 확실한 안전의 표식이었다.

귀 잘린 남자들은 자기만 웃긴 성희롱을 하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섹스가 아닌 다른 것에도 풍부한 관심이 있는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던 데다가,

자기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개새끼도 아니었다.

 

2. 강태영은 천천히 자신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고양이는 그를 따랐다.

끝까지 따라오면 그는 자신이 간택받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게 강태영이 살아오면서 건강한 사회적 접촉을 처음으로 배우는 순간이 될지도 몰랐다.

 

3. 그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확 드네.

사람이 아닌 것에서 사삼을 애써 발견하려고 하는 게 사람의 중요한 특성인 것 같다고.

 

4. 세상에 곱게 늙는 게 어디 쉬우냐?

중장년까지야 멋있게 나이 들 수도 있는 거지만, 노인 돼서 안 추해지기가 더 힘든걸.

젊은 시절에 다 써버린 품위의 밑바닥까지 긁고 있으면 그게 노추지.

 

5. 모든 꼰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이재가 안 간다'는 말이지.

 

6. 사람이랑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사람인 거지.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칭호에 너무 큰 무게감을 두는 것 같아.

 

7.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면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증오하는 것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

관계의 균열은 더 이상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우리의 관계는 오직 관성으로만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소정을 수저 잘 물고 태어나서 고결한 척할 수 있는 위선자라고 생각했다.

 

8. "그 전자뇌를 달아서 자율신경계가 회복되면, 그 감정이 정말 자기 감정이라고 확실하실 수 있나요?"

"글쎄요, 또 생각해보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게 감정의 전부는 아니죠.

어쨌든 제 뇌의 다른 부분이 그걸 또 해석해서 총체적으로 감정이 생기는 거니까."

"아, 그럼 그게 정말로 감정의 근원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네요."

"네, 그냥 감정이라는 구조의 부분, 뭐 이런 거겠죠. 그러니, 그냥 제 감정에 도움을 받는 거고.

뭐 사실, 그게 진짜 제 감정이 아니더라도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어쨌든 제가 느꼈던 건 진짜 있었던 사실인데, 그리고 나조차도 다 똑같게 느꼈는데,

누가 가짜랑 진짜를 구분하겠어요."

 

9. 우리 네오미트에서 인간 배양육을 판매하는 것이 약간 징그러울 수도 있지만,

세초 제공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오직 세포 추출을 허락한 사람의 세포만을 추출하여 배양합니다.

인간이 아닌 그 어떤 동물에게서 세포 추출의 허가를 명시적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그 어떤 동물도 사람도 희생하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고기를 만듭니다.

 

10. 사람들이 사람 고기를 먹고 싶어 한다는 욕망으로 돈을 벌려고 했을 뿐이라고.

쟤가 사람 아닌 동물의 해방을 진지하게 바랐다고?

만약 저 사람이 정말 권리 운운하면 왜 굳이 널 먼저 찾아갔겠어? 나랑 이야기했겠지!

 

11. 내 언니를 이곳에서 바라보면 정착액으로 굳힌 파스텔 가루처럼, 시간 위에 붙박인 것처럼 멈춰 있으리라.

하지만 그 우주선 안에서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

결국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오면 우리의 시간은 다시 합쳐지리라는 것도 나는 안다.

 

키워드: 에어팟, 썩은 생선, 회색앵무새, SF소설, 안드로이드, 자매 별, 배양육, 중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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