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시녀이야기-20.05.09~05.10
영미소설 | 시녀이야기 | 종이책 | 마거릿 애트우드 |
김선형 | 황금가지 | ★★★★★ |
후기 '순응이라기엔 생존을 위해 강요된 체념'
반씩 끊어서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 새벽 세시까지 붙잡고 있었다.
발터 뫼어스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름'을 경험한 작가같다.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고, 모든 단어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각각의 빛을 뽐내고 있다.
두께에 겁을 먹었지만 간결한 문장 덕분에 굉장히 속도감 있게 읽혔는데,
그 와중에 묘사는 섬세해서 한 문장만 계속 곱씹기도 했다.
마냥 불쾌하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이 속도감과 묘사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시종일관 나를 따라다녔다.
저항을 생각하던 오브프레드와 모리아가 점차 상황에 순응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 밟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길리어드' 어느시기, 다양한 사회문제를 겪던 국가는 체제 아래 국민들을 통제하기로 결심한다.
성경에 따라 남성, 여성을 구분하여 그들에게 각각의 직위와 역할을 부여한다.
남성은 사령관, 천사, 수호자, 눈으로 여성은 시녀, 하녀, 아내, 빈부.
각자의 역할에 맞는 색상과 옷이 있었으며, 차나 옷 그외 모든 물건들은 색으로 구분이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사령관은 검은색, 하녀는 초록색, 시녀는 붉은색이었다.
여성중 일부는 레드센터로 보내져 '대리모(라고 칭할 수 밖에 없다)'가 되기위한 교육을 받는다.
사령관의 아내와 딸을 제외한, 재생산이 가능한 여성이라면 모두 레드센터로 보내졌다.
이들의 자궁은 국가를 통해 통제되었다.
모든 국민들은 아무렇게나 섹스를 할 수 없었으며, 허락되는 순간은 오직 단 하나 '임신'을 위해 정해진 날 뿐이었다.
그것을 어기는 자는 '구제' 또는 '콜로니'행에 처해졌다.
자유로웠던 시절을 잊지못하고 늘 가족을 그리워 하던 오브프레드.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지금의 처지에 순응하지 않고 내면의 저항과 언젠가 찾아올 해방을 상상한다.
아내의 도움으로 얼마남지않은 유효기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닉(수호자)과 섹스를 했다.
생존을 위해 시작된 섹스는 어느덧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다. (마치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브처럼)
닉을 통해 사랑을 갈구하던 오브프레드의 모습은 '시녀'가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으로 보였다.
그랬던 그가 '구제'와 오브글렌의 상실을 겪으면서 현상황에서의 안주를 택하게 된다.
레드센터에서 탈출할 정도로 반항적이었던 모리아는 죽음에 가까운 '콜로니' 대신 '클럽'을 택한다.
모리아를 통해 희망을 얻으려던 오브프레드는 그런 모습을 보며 깊은 슬픔을 느꼈다.
두사람의 모습은 순응이라 칭하기엔 그것은 생존을 위해 강요된 체념에 가까웠다.
이들이 결국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전해진 기록을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탈출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죽음에 이르렀을까 그도아니면 더 끔찍한 상황에 처했을까.
점차 체제에 순응하는 그들을 따라가다보니 독자인 나까지 함께 순응하고 있었다.
오브프레드의 감정에 동화되어 이 모든 것이 여성의 권리를 위한 적절한 조치인듯 느껴졌다.
그러다 유럽 곳곳의 사례가 떠올라,
이 모든 것이 전도유망한 작가의 상상에 그치지는 않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든 막아야겠구나, 이 책은 그래서 쓰였구나 생각했다.
오브프레드가, 오브글렌이, 모리아가 내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1985년에 쓰인 책은 훨씬 나중의 여성까지 염려에 두고 있었다.
그야말로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연대였다.
이 독서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이름이 왜 숱하게 거론되는지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이어지는 <증언들>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듣게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책장을 넘기면서 올해 읽은 몇몇 책이 스쳐지나 갔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더니, 이 책의 정신은 이곳저곳으로 이어져있었다.
그 펜으로 이어진 연대는 그럼 더 강하겠구나,
시작했으니 이젠 멈출 수 없겠구나 하고 막연히 긍정적인 희망을 품게되었다.
눈길로 민들레를 찾던 오브프레드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순간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책장을 끝까지 넘기는 동안
오브프레드와 오브글렌의 본명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답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1. 세상에는 자유가 한 가지밖에 없는 게 아니야. 리디아 '아주머니'가 말했다. 목표를 향한 자유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로부터의 자유가 있지. 무정부 시대의 자유는 무엇을 행할 자유였어. 하지만 지금 여러분에게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거야. 그것을 얕보지 마.
2. 예사라는 건, 여러분이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야.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지금은 보통으로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게야. 예사가 될 거야.
3.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다.
4.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5. 기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다림'이 될 수 있다. 내게는 이 방이 '기다림'의 장소다. 여기 있는 나는,
괄호사이의 백지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여백이다.
6. 시간은 가만히 멈춰서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휩쓸고 지나가, 나를 깨끗이 지워 버리고 말았다.
나라는 존재는 경솔한 아이가 너무 밭은 물가에 남기고 가버린, 모래로 만든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애에게 있어 이제는 하얗게 지워져 버린 존재다.
7. 이 이야기를 당신한테 털어놓음으로써, 당신이 존재할 것을 의지로 명하는 바이다.
나는 이야기한다, 고로 당신은 존재한다.
8. 과거는 위대한 암흑이오, 메아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속에서 목소리들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들은 그들이 온 세상의 어둠에 흡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우리 시대의 선명한 빛 속에서는 그 목소리를 정확히 해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족
+) 별개로 읽는내내 조금 화가 났는데, 최근에 혹평했던 모 책이 떠올라서였다.
<시녀이야기>를 읽고나니 얼마나 무례한 책인지 깨달았다. 등장인물이며 관계며, 종교의 역할까지 너무도 똑같았다.
혹평을 반성하면서 긍정적인 면을 보자고 다짐했던게 엊그제같은데, 직접 읽고보니 해도 너무했다 싶네.
++) 표지. 홀로그램박에 감탄하다가, 책을 중반쯤 읽고서야 표지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책 한권의 요약이 표지에 다 있다.
일러스트 그린분에 대한 정보가 궁금했는데 이름밖에 없더라. 모든 책이 늘 그랬지만 이번은 좀 많이 아쉽네..
한정양장본과 달리 반양장 표지는 흰색차가 그려진것도 아쉽고. 물론 이런 아쉬움을 상쇄할 만한 책이었다.
키워드: 길리어드, 시녀, 자궁, 레드센터, 사령관, 구제, 장벽, 민들레
꼬리(연결고리):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얼마나 나쁜 책인가. 시녀이야기를 먼저 접했더라면 이 책에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