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20.05.08
에세이 |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전자책 | 김현아 | 쌤앤파커스 | ★★★★★ |
후기 '과연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경찰관 속으로>에서 이어진 독서. 다양한 직업군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싶었다.
그동안 우리는 '백의의 천사'라는 말로 그들의 강도높은 노동을 당연시 하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메르스때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작가의 편지는 병원을 홍보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지만,
그토록 원하던 근무환경 처우개선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앞다투어 그를 반기던 이들이 하나같이 안색을 바꾸고 외면하기 급급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전세계가 떠들썩한 지금.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나하면,
몸바쳐 노력한 의료진에게 대구시가 수당을 미지급했다는 기사가 앞다투어 보도되고 있다.
사람을 구하고자 달려간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자급자족, 무조건적인 희생이었다.
원래 퇴사하기로 되어있던 간호사들이 퇴직하는 상황에서도 '간호사들 코로나를 두고 퇴사'
이런식의 기사가 포털을 뒤덮었다.
거짓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었다. 거짓에 휘둘리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해치는 사람이 있었다.
작가는 "간호사가 살아야 비로소 환자도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살려야 한다"는 메르스 당시 정부의 의도된 연출에 생략된 목적어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때의 정부와 지금의 정부는 무엇이, 얼마나 바꼈을까.
또 우리는, 국민은 얼마나 바뀌었나.
단 한순간도 기자를 통해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 누가있을까.
간호사가 처한 열악한 근무환경과 동시에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감동, 슬픔 모두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분노였다.
'헤어지자는 말에 홧김에 불을 지른 남자친구로 인해 두 다리를 잃은 환자'
'50살된 남편과 국제결혼을 했으나 계속되는 폭력을 피해 가출, 결국 용광로에 두 발이 녹아내린 20살의 아내'
누군가를 살리고자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죽이고자 애쓰는 사람이 있다.
극과 극의 사람들을 접할때면 '역시 사람 속은 모르겠다'라는 간단명료한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쉽게 정의할 일이 아님에도.
환자를 보살피는 간호사에게 '저 x이 우리 아빠를 때린다'며 모함하고 폭력을 휘두른 보호자가 있었다.
곤경에 처한 간호사를 외면하는 관계자가 있었다. 함께 싸우는 이는 동료간호사 뿐이었다.
누가 보아도 잘못이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사건이었음에도
'개인과의 일은 개인이 처리하는 것'이라 단정짓는 관계자가 있었다.
보호자들은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해당 간호사를 괴롭혔다고 한다.
그는 간호사를 괴롭힘으로써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것일까.
본인이 하지 못하는 돌봄을 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음에 대한 비통함을 폭력으로 풀고자 했음일까.
작가는 이 일을 계기로 21년 2개월의 병원생활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접하는 간호사들도 모든 환자의 마음을, 보호자의 마음을 뼛속까지 알 수 없었다.
사람 속을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했다.
<재난을 묻다>에 이어 <경찰관 속으로>에 이어 오늘의 책에 이르기 까지.
다음엔 또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될까.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여정은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 의사의 치료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간호사의 돌봄은 희미해져가는 생명을 붙잡는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이미 생명이 다한 환자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삶과 죽음 사이를 맴돌다 겨우 삶으로
돌아와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남은 삶을 결정하는 건 단 4분이었다.
간호사들은 자기 환자의 4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저승사자와 싸웠다.
2. 4분이면 죽는 거야, 뇌는. 그러면 살아난다 해도 평생 누워서만 지내야 돼. 환자의 심장이 멎을 때마다
담당 간호사가 얼어붙어서 시간을 지체할수록 환자는 그렇게 되는 거야.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우선은
무조건 달라붙어. 달려들라고. 너와 네 환자 사이가 가까울수록 네 환자는 살아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니까.
3. 간호사도 사람이다. 사람이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단지 혼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온몸을 불살라 '활활 태우는'일만이 간호사가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걸까.
4. 내가 포기하고 주저앉는 순간, 내 환자들도 같이 주저앉았다. 내 환자들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보호를 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혼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시간들이었다.
5. 내가 처음 입사시험을 치렀던 S병원이 신규 간호사에게 지급한 초봉이 36만원이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간호사의
부당한 처우와 인권 유린에 대한 기사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가끔 내 귀에도 들려오던 실체 없던 소문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5. 삶은 때때로 단호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순간순간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 번의 실수 치고는 너무나 혹독한 대가였다. 어쩌면 단 한 번의 실수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비록 꽃잎 몇 개가 없어도 그건 코스모스였다. 비 온 후 다시 찾은 그곳에서 반쪽만 남은 꽃잎들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그 모습은 상실에 갇혀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달려가던 그 아이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였다. 반만 남은 나머지 꽃잎은 그 어떤 꽃보다도 탐스러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7. 누구는 걷는 동안 한 번도 밟지 않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지만 누구는 너무 일찍 밟아 가려던 걸음을 그 자리에서
멈춰야 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삶에서 지뢰 탐지기 같은 건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삶이란 그렇게 불공평하면서 공평한 무엇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8. 간호사란 직업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면 돌볼수록 점점 자괴감이 커져가는
직업 같았다. 어쩌면 자괴감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9.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세대를 불문하고 '보이는 사람'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세상에 더 잘 보이도록 버둥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에 내보일 자신의
모습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묵묵히 이겨내며 스스로 강해졌다. 사실 세상은 언제나 이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에만 비로소 바뀌어갔다.
10. 간호사는 환자를 지키는 사람이다. 환자를 지키기 위해 저승사자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는 삶의 변덕을 피해갈 수 없다. 이것이 간호사의 존재와
일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이유이며, 그들의 용기를 꺾는 일을 더더욱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호사가 살아야 비로소 환자도 살 것이므로.
사족
사실 간호사에 대한 인식에는 몰상식한 영상매체들의 연출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짧게 딱 달라붙는 치마.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며 담당의사를 험담하거나 유혹하는 모습들.
혹은 환자와의 로맨스. 실상의 그들은 앉을 틈도 물마실 틈도 없이 일분일초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음에도.
늘 주인공으로 표현되는 의사의 바로 옆에는 그보다 더 치열하게 더 가까이 환자를 접하는 간호사가 있었다.
외면 되어서는 안될 또다른 주연. 그들을 우리는 간호사라 부른다.
키워드: 간호사, 메르스, 중증환자실, 병원
꼬리(연결고리): 경찰관 속으로
-언론의 또다른 희생양 경찰의 감정적 노동에 대한 이야기. 세금이 월급이 아닌 그저 한명의 노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