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54. 곤(GONE)-20.05.02

독서의 흔적 2020. 5. 3. 12:50

만화 곤(GONE) 종이책 수신지 귤프레스 ★★★★★

 

후기 '같이 했는데 왜 임신은 여자만 하고 책임도 진다구요?'

며느라기로 한때 큰 화제였던 수신지 작가님이 '낙태죄 강력처벌'을 소재로 가상의 현실을 다룬 책.

사실 책을 펴자마자 감수자 천지선님의 소개에 놀랐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노동 사건의 사용자 대리나 변호를 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여기서 부터 이 책 믿고 봐도 되겠구나 싶었다.

<곤>은 낙퇴죄뿐만 아니라 돌봄노동, 호주제 등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담고있다.

낙태죄는 합법이라는 판결아래 낙태여성을 추려내는 IAT검사가 실시된다.

1953년 이후 한번이라도 낙태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된다는 그야 말로 지옥같은 설정이다.

본인의 인내심 한계치를 측정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강력추천한다.

참고로 내 인내심은 티끌같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2권까지 있었다면 급성스트레스로 쓰러졌을 것이다.

내내 표지와 같은 표정으로 책을 읽고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람?)

작가님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시점에 이 책을 내는 것이 옳은 일일지 고민하셨지만,

독자입장에서는 이 책이 나오고 또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읽다보면 남자들의 뻔하고 뻔한 레퍼토리에 진절머리가 난다.

'임신이면 책임질게.' '그러게 왜 피임을 안했냐. 조심했어야지.' '낙태 그거 생명 죽이는 거잖아.'

'낙태하고 나서 죄책감 때문에 다시 애기 낳을 수 있겠어?' '여자여도 상관없지. 또 낳으면 되니까.'

욕이 아까울 정도로 무식한 발언들이다.

임신은 여자가 했고, 앞으로의 고통도 여자의 몫인데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며

(결혼? 결혼이 책임지는 행동인가? 그럼 뭐 도망이라도 가겠다는 것인지.)

피임은 여자 혼자하고 여자 혼자 조심해서 될 일이며

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 생명 생각하느라 임신한 여성 생명은 뒷전으로 하는 것이며

낙태에 대한 죄책감은 여자 혼자 생기고,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잘 살 일이며

남자아이를 낳을때까지 덮어놓고 낳아볼 일인 것인가.

남성우월주의에, 생명경시에, 가부장제까지 하나하나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뿐이다. 

슬프게도 이 논제 하나로 여성들간에도 입장이 갈린다.

뭐, 사람은 성장배경에 따라 사상이 달라진다고 하니까 이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헌이든 합법이든 왜 타인이 결정을 내리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일부 사람들은 아닌가보다.

덮어놓고 낳아보자를 지나 아들딸 구별말고 한명만을 넘어 가임기 출산지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여아가 낙태당했고, 차별당했으며, 자라서는 참견까지 당하게 되었나.

이 과정에 진정한 책임을 지는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가슴아픈 일이다.

(낙태를 가지고 협박하는 남성은 보았어도 처벌받는 남성은 못봤다.)

잘 읽었다가 작가일기에서 흠칫한 구절이 있었는데,

'내 자궁입니다'라는 말은 소수자를 배제하는편협한 시선을 내제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낙태죄를 좀 더 넓게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는 나도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라 소개해주신 책을 읽어볼까 한다. (추천: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인데, 이를 '생명경시'라는 말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책에서 호주제도 다루고 있었는데, 2권으로 이어질 듯 해서 이에 대한 후기는 생략한다.

 

인상깊은 구절

낙태죄 폐지는 단지 여성의 자유 의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넓게는 가부장제 거부, 국가의 성 통제 반대 등에 대한 의제이고 그를 위해 많은 성소수자가 연대하고 있다. 그런데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는 이 문제를 자궁을 가지 사람만의 문제이자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해버린다. 낙태죄 문제를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문제는 얼마나 많으며 내가 겪지 않고는 이해하기도, 아예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소수자의 힘듦이 얼마나 많은지.

 

키워드: 낙태죄, 낙태, IAT검사, 호주제, 돌봄노동, 가부장제
꼬리: 유럽 낙태 여행

-낙태죄를 폐지시키기 위해 다른 국가의 여성들은 어떻게 싸우고 싸웠고 무엇을 이루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