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진주-20.03.16~03.17
한국소설 | 진주 | 전자책 | 장혜령 | 문학동네 | ★★★★★ |
후기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의 역사'
에세이라기엔 넘쳐흐르는 무언가가 들었고, 은유적 표현이 가득한 시라고 하기엔 자전적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
분명히 소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샀는데, 책을 읽자마자 이게 소설이라고...?하는 물음이 생겼다.
이상한데, 내가 아는 소설이랑은 다른데...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운 이상의 작품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낯선 형태에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어서 관련 기사와 출판사 포스트, 작가 블로그를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발견한 글을 읽고나서 일단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자 마음먹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읽는내내 '난 바보라서 작가의 이 문장들을 온전히 삼키지 못할거야.' 하는 생각뿐이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럼에도 9장에 이르러서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내 안에 가득했다.
그동안 나는 너무 편하게 살아와서 이 책을 받아들이기 힘든거였다. 내가 겪어보지 못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늘 보아왔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남이 늘 보아왔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가난한 집에서,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던 그.
부재로서 실재했던 아버지는 토해내듯이 써 내려간 글 속에서 실재했다.
그 시절 수 많은 운동가 아버지들. 나라를 지키려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집을 지켜낸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
누가 그들의 인생을 상상이나 했을까. 손에 쥔 부적이 하느님이 된 어머니의 심정을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나에게 와 닿음으로써 이야기가 되었다.
인상깊은 구절
1. 두려움은, 누구나 간직한 마음속 두려움은,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고 공집합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누군가를 죽일 만큼 때리게 합니다.
2. 물음이 물음으로만 남는 시간, 물음이 또다른 물음으로만 답하는 시간,
그렇게 쌓인 너무 많은 물음들이 온몸에 들어차 터질 듯한 공명의 시간들을 그녀는 오래 겪었다.
3. 여러분, 사유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사유는 우리가 인간이기를, 오늘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4. 회한으로부터 슬픔이, 분노로부터 절망이, 독재자로부터 아버지가 구분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서 남편이, 남편에게서 아들이 구분되지 않는다.
5.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오늘날 이 세계에서 반딧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시야가 반딧불을 찾아날 만큼 충분히 어둡지 못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6. 미행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신을 검열하기 전에 당신이 당신 자신을 검열하고 만다는 것.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7. 당신들 모두가 죽어 없어진 뒤에도 이 방의 불빛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밤 당신들의 악몽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8. 오늘이 어제 같고 오늘 하루가 어제 하루와 다름없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의 복사본에 지나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늘의 나는 어느새 과거의 나로부터 먼 곳에 와 있다.
9. 날 때부터 사랑을 아는 자는 없다. 날 때부터 기다림을 아는 자는 없다.
알기도 전에 뛰어든 자만이 오직 그것을 아는 자가 될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를 향한 긴 기다림은 사랑이 되었다. 병이 되었다. 사랑이고 병이 되었다.
10. 나에 대해 쓴다고 해서 나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나의 이야기는 당신을 향해 쓰이고,
당신에게 가닿음으로써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제 그것을 알 것 같다.
사족
읽는 동안 여러의미로 힘들었다.
후기를 쓰고, 밑줄 그어둔 글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말들이 있었다.
쌓아 둔 책들을 읽을만큼 읽고나서 이 책이 희미해질 때 즈음, 꼭 다시 찾아봐야겠다.
그때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카카오메이커스에서 친필사인본을 팔았었다고??? 너무해...ㅠㅠ 입덕은 빠를수록 좋다더니,
그게 나한테도 해당될 줄은 몰랐지.... ㅠㅠㅠ..... 나도 친필사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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