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사건-20.03.04
여성에세이 | 사건 | 전자책 | 아니 에르노 | 윤석헌 | 민음사 | ★★★★★ |
후기 '누군가에게는 축복조차 저주'
다 읽고보니 두번째책도 민음사네.
장바구니에 두달간 묵혀뒀던, 어떤 주제인지 알고있기에 쉽사리 손에 들 수 없었던 책이었다.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이 쉬이 읽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꼭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읽는 내내 기록을 위한 밑줄이 아닌, 기억을 위한 밑줄을 수도 없이 그어댔다.
흔히들 '경험하지 않은 자는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내가 겪었노라고.
아직까지도 찬반논란이 있는 '임신중절-낙태'를 말이다.
그는 이 이야기가 끝나버린 이야기라고 해서 그 경험이 묻히게 놔둘 타당한 이유가 되지않는다고 한다.
침묵은 똑같은 침묵을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라고.
23살에 쓴 일기를 더듬어가며 써 간 이 책은 그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기까지의 과정과 감정이 세세하게 쓰여있다.
하고싶은 말도 많고, 쓰고싶은 말도 많지만 삼키려고 한다.
이 책은 책 내용 그대로 읽혔으면 한다.
다만, 아직까지도 낙태가 죄라고 말하는 이들에겐 이책을 권한다는 말을 하고싶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조차 저주일 수 있다고.
책장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본다. 이 만큼 적절한 표지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침묵을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아니 에르노의 이유있는 고백과 연대(표지와는 달리 나는 이것을 용기라고 하지않겠다.)에 박수를 보낸다.
인상깊은 구절
1.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2.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3.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내 엄마를 죽였다.
4. 우리는 조용히 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 못 할 장면이다. 희생의 장면.
5. 삼 개월 만에, 죽은 태아를 먹일 수 있도록 내 몸이 젖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자연은 부재 속에서도 기계적으로 계속 일을 했다.
6.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워드 : 낙태, 임신, 중절,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