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읽어요-20.11.17
에세이 |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읽어요 |
종이책 | 김하정 | arte | ★★★★★ |
후기: 나는 말하고 당신은 본다. 당신은 말하고 나는 읽는다.
목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라 읽는다니, 무슨 뜻일까?
"나는 당신의 말을 보고,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농인, 청각장애인 유튜버 '하개월'의 진솔한 목소리가 담긴 에세이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읽어요>
듣고 말하기가 아닌, 보고 말하는 소통을 만나보았다.
유튜버 하개월의 존재는 평소 팔로하고 있던 '이방인'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방인님은 농인, 청각장애인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편견과 불평등에 대해 가감없이 발언하는 분이다.
ㅁ모 만화가의 잘못된 수어 연출을 두고 공개적으로 정정요구를 한다던지,
농인, 청각장애인의 눈에 비친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이 얼마나 무례한지,
넷플릭스 자막이 거슬린다는 청인에게 '넷플릭스는 청인만을 위한 매체가 아님'을 말한다던지.
청인 위주의 다양한 편견을 바로잡고 정정해주는 아주 멋진 분이다.
종종 이분의 트윗을 통해 내가 갖고있던 편견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곤 한다.
더 많은 소수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이방인님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면서 넷플릭스에서 한국컨텐츠에도 자막을 제공함을 알게되었고, 그제서야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임을 인지했다. 트위터에서 이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는데, 그때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분의 트윗에 종종 등장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유튜버 하개월이자 이 책의 작가였다.
영상매체는 도통 적응이 안되는터라, 매번 궁금해하면서도 유튜브를 찾아본 적은 없었다.
호기심만 쌓여가던 차에 책이 발간된다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출간과 동시에 구매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책이 도착하자 읽던 책은 저 멀리 던져놓고 황급히 책장을 펼쳤다.
(청인의 시선으로 쓴 장애관련 도서는 아무래도 청인중심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 있기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듣고싶기도 했다.
이 생각 또한 이방인님의 트윗을 통해 하게되었다. 올해 장애인의 날에 읽은 '희망 대신 욕망'의 영향이 있기도 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귀하고 귀한 책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녹아있는 책은 늘 귀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음에도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일화들이었다.
1. 듣기평가
: 모의고사와 수능에 빠지지 않는 듣기평가. 내내 듣기평가를 실시했음에도, 농인, 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시험을 치는지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게 듣기평가는 '듣고 해석하는' 문제였고, 나는 청인이었으니까. 듣기평가 시간에는 헬기도
띄우지 않는다는데, 들리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는 의문조차 없었다. 나의 당연함이 당연함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모른채 살았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참고로, 농인, 청각장애인의 경우에는 듣기평가 지문이 제공된다고 한다.
(이방인님 트윗을 보니, 이를 두고 불평등을 논하는 아이들이 간혹있나보다. 참으로 안타깝다.)
2. 입사 면접
: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만병의 근원인 입사. 간신히 1차 서류를 통과하고 나면, 2차 면접이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멋진 옷을 차려입고, 머릿속으로 단어를 고르고 또 골라 또박또박 말한다. 내가 준비된 인재임을 열심히 어필한다.
면접관은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여기까지가 청인들의 입사과정이다. 그렇다면 농인, 청각장애인은 어떨까?
구어가 가능한 농인, 청각장애인도 있고, 비교적 경증인 농인, 청각장애인이 있지만 이들에게도 입사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작가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공공기관을 통해 입사지원을 한 적이 있고, 청각장애가 있음을 명시했음에도
해당 기업은 전화를 걸었다. '청각장애가 있어 문자로 전달해달라'하니 더 이상 답장이 오지않았다. 작가는 면접에 불합격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전화는 불가능'함을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업무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든 간에 문턱에서부터 이미
불공정함을 겪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비대면 면접이 많이 늘었는데, 농인, 청각장애인 지원자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3. 대선 개표방송
: 각 방송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는 개표방송. 아마 대다수의 국민들이 선호하는 채널을 틀어놓고,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듯
개표방송을 즐길 것이다. 화려한 CG, 맛깔나는 입담, 시시각각 바뀌는 득표율. 어느 채널이 더 재밌는가를 두고 SNS에서도
축제의 장이 열린다.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한국의 개표방송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농인, 청각장애인들이다.
대선 토론에서는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열심히 수어통역을 했지만, 개표방송은 그렇지 않았다. 작가는 결국 실시간 수어스트리밍
수어통역 방송을 통해 개표방송을 지켜봤다고 한다. 우리는 한 대의 전자기기로 해결될 문제인데, 작가에게는 두 대의 전자기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대선 토론 당시에도 수어통역란이 너무 작고,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네 명의 후보를 일일이 통역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수차례 있었으나 개선되지 않았다.
굵직한 것만 추려도 이정도였다. 이외에도 여성 농인, 청각장애인으로서 겪었던 문제도 다수 있었다.
한 후기에서 "우리가 늘 건강하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미래를 생각하며 이 불평등함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언젠가 우리도 신체적으로 불편하게 될 테니 각종 시설물이 노약자가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트위터에서 어떤 청인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고, 이를 이방인님이 인용하며 다음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장애인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인권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미래의 가능성'이 아닌, '현재의 인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멋모르던 시절에 이런 말을 접했다면, 일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참 예민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시선이야말로 청인 위주의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미래의 일꾼이 될 아동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니, 잘 지키고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와 같은 것이다.
(조금 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미래의 사회구성원이 될 태아를 낙태해선 안된다"도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 지워지는 것은 '현재의 여성 인권' 이 되겠다.)
인권을 존중해달라는 목소리는 '소수를 위해 다수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기 일쑤였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함을 말하는 사람들.
배려가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이다.
1995년 도로교통법개정 이전까지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었다.
2010년부터는 청각장애인도 7년 무사고 유지 후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다.
여전히 1종 대형 및 특수면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지만, 청각장애인이 택시기사로 일하는 '고요한 택시'가 등장했다.
불평등과 편견이 가득한 틈을 비집고 나와, 모두가 당연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말하고 당신은 본다. 당신은 말하고 나는 읽는다. 각자의 언어로, 때로는 부산하게 때로는 침착하게.
당신의 손짓과 목소리에 내 목소리가 더해져 세상을 만든다.
느리지만 천천히, 꾸준히,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미묘한 속도로.
그 누구도 국립서울현충원 무명용사탑 앞 계단이 경사로로 바뀔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 모든 변화가 '배려'가 아닌 '의무'임을 모두가 깨닫게 되는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44명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주민 80퍼센트가 수어로 대화를 하는 벵칼라 마을처럼.
"우리는 동등한 권리를 '당연히' 가져야 하고, 앞에서 말했듯 주저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당연히' 변할 것이다."
+) 책을 읽고, 다양한 목소리를 접하고도 참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장애인이나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들 볼 때마다
뭐라도 더 도우려고 애쓴다. 그것이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동정의 시선'이 더해진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찜찜했다. 일정 선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배려가 아닌 오지랖, 그리고 동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데, 바꾸는건 얼마나 어렵겠어. 그렇지만 바꿔나가야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인상깊은 구절
1. 기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빨리 결승선을 통과하느냐보다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 인생의 느린 달리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2. 왜 장애학생 지원제도는 대학부터 적용되는 걸까? 동등한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범위를 초등학교,
중학교부터까지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별개로, 의무교육 과정에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과목이 채택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내 알림장이 점점 비워지던 그 시절, 그때부터 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았다면 나는 지금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3. 어떤 사람들은 소리를 '듣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소리를 '본다'. 상대의 입 모양을 보는 것은 내겐 생존과 다름없는 일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입안의 침이 썼다.
그럼 나는 처음부터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내가 지닌 장애를 먼저 드러내야 하는 걸까?
4. 수어는 농인에게 하나의 언어로 자리 잡았고, 대한민국에서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수어로 이미 말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음성언어만을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5. "일반 남자만나서 결혼해야지." 그냥 남자가 아닌 '일반 남자?' '일반 남자'란 무엇이길래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 등장하는가?
그 정의가 어떻든 적어도 내게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들을 수 없는 것을 대신 듣는 사람, 즉 내 전용 통역사처럼 느껴졌으니까.
이는 곧 내가 약한 대상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장애인이 '일반 남자'를 만난다고 하면
동경의 눈빛을 받거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일반 남자'를 만나는 것이 자랑할 만한 트로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6. 재난과 관련된 상황에서 농인, 청각장애인은 우선적으로 열외당할 때가 많다. 지금 당장 무슨상황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제일 크다. 2019년 강원도에서 큰 산불이 났을 때의 특보를 기억하는사람이 있는가? 각 방송사는 시시각각 강원도의 상황을
긴급하게 전달했지만, 그 어디에도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인적 물적 피해가 막심했던 재난 방송에 단 한 명의
수어통역사도 볼 수가 없다니. 게다가 당시 속초농아인교회가 전소되기도 했다. 특보에서 수어통역을 볼 수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키워드: 농인, 청각장애인, 수어, 구어, 베리어프리, 수어통역사, 배려와 의무, 인권
꼬리(연결고리): 희망 대신 욕망
-귀하디 귀한 당사자의 목소리. 내제된 편견을 마주하는 것은 부끄럽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목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