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170.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20.10.24~10.25

독서의 흔적 2020. 11. 1. 11:42

사회문제/가정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전자책 임인택, 하어영,
임지선, 류이근,
최현준
시대의 창 ★★★★★

 

후기 '이것은 미완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사실상 국가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끝없이 절망했고 이렇게나마 수면 위로 올라왔음에 작게 안도했다.

사회는 돌봄노동을 가정의 영역으로 남겨두었고,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를 최말단 노동자(사회복지사 및 상담가)들의 몫으로 전가시켰다.

'일단 낳으면 알아서 자란다'는 이들에게 묻고싶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주민등록을 하고, 의료 혜택을 받으며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까지

온전히 아이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기자들처럼 나 역시 '도대체 아동보호기관들은 뭐하는거냐'고 수차례 분노했다.

한 상담가 당 최소 140가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최전선에서 학대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고, 꺼져가는 생명을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보호아동의 가해자. 즉,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하고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상담가 10인'이라는 센터 내 근무자 수는, 국가가 딱 그만큼의 관심을 보였음을 뜻했다.

2016년 모 정권 당시엔 아동 보호 쉼터를 22개소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오히려 아동학대예방 예산이 수십억가량 삭감되는 바람에 1개소에서 그치고야 말았다.

열악한 환경은 미해결된 학대의 현장을 포기도록 만든다.

그래야 상담가가 버틸 수 있고, 새로운 학대 피해자를 관리할 수 있다.

지킬 수 있는 아이를 지키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출생률을 운운하는걸까. 낯이 두껍다는 이를 위한 표현이 아닐까.

태어난 아이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과연 '우리에겐 태어날 아이를 지킬 책임이 있다'고 입을 뗄 자격이 있을까.

징집에 응하지 않는 대상자는 경찰을 동원해서라도 찾아내면서, 취학통지에 응하지 않는 아동은 방치되는 현상황.

국격이 무엇이고 국력이 다 무어냐. 국가의 시선은 언제나 더 높은 곳을 향한다.

방치와 방임이 폭력을 낳고, 폭력은 죽음을 낳는다. 이 모든 것이 과연 가해자인 부모만의 잘못일까.

침묵하고 외면하며 학대에 일조한 공동체를 탓하기엔

나 또한 알게모르게 수십, 수백의 죽음을 외면해온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분노와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막지 못한 죽음,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죽음들을 위해 숨죽여 기도해본다.

 

 

인상깊은 구절

1. 이것은 미완의 책이다. 글을 마감하려 할 때마다 또 다른 우주가 파괴된다.

꽃을 피우는 첫번째 들판에 모든 어른들이 서 비를 맞고,

사라진 우주를 하나하나 호명하기까지 아동 학대 문제는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

 

2. 김성준 임상심리 전문가는 "학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고문을 받다 보면 피해자는 옷도 못 챙기고 더러워지고 무기력해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고문 가해자는

'이런 쓸모없는 인간쓰레기는 고문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후 정당화'다.

 

3. 아동 학대 사망은 많은 경우 축소 기록된다. 학대로 인한 아이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자기 방어 기제는

돌림병을 막기 위한 격리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정부 쪽 수치에는 법원, 검찰, 경찰, 행정자치부 등의

신생아 살해나 살해 후 자살 기록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으니 온전한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4. 차에 아이만 놔두는 게 미국에선 처벌받을 수 있는 방임이 되지만 한국에선 문제 될 게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동 학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 때문이다. 특히 방임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 한국에서는 '때리는 것도 아닌데 방임을

아동 학대라고 볼 수 있나?'라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설명 방임을 아동 학대라 치더라도 전체 아동 학대를 놓고 보면

방임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덧붙인다. 과연 그럴까?

 

5. 저출산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한 해 수조 원의 예산을 쓰며 출산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태어난 아이들의 사망률을 낮추는 일이다.

특히 신생아 살해와 같이 그동안 사각 지대에 있었던 아동 살해를 줄여야 한다.

아이는 낳기보다 키우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여기서도 꼭 들어맞는다.

 

6.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 좌절과 무력감,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녀에게 투사될 때 학대와 방임이 일어난다.

무력한 아동에게 힘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실직한 부모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아동 학대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7. 언론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가정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에 더 요란을 떠는 것일까?

아동 학대 자체도 불편한 소재이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는 더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티브이 앞에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는 아이와 부모가 한쪽은 잠재적 피해자, 다른 한쪽은 잠재적 가해자로 비친다.

이런 설정을 좋아할 부모는 많지 않다. 또 남의 범죄엔 분노를 쉽게 투사할 수 있지만, 우리의 범죄는 분노보다 비극과 동정 등

여러 감정이 겹쳐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미디어는 적어도 이런 뉴스를 선호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범죄를 직시하길 꺼린다.

 

8. 깊게 뿌리박힌 '계모 콤플렉스'는 되레 가해자 대부분이 친부모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9. 초등학교 입학 단계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만 일곱 살이 되면 의무 교육 과정인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러나 거주가 불분명한 경우 취학 대상이 되지 않는다. 취학통지서도 받지 못한다.

해마다 일곱 살 안팎의 아동 15,00여명이 이런 상태에 놓인다. 거주 불명 가정은 경제 사정도 좋지 않고 그만큼 학대 가능성도 높다.

교육부는 이런 아동의 존재를 알지만,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국방부가 거주 불명으로 입영통지서를 받지 못하는 청년을 경찰에 고발해 찾아내는 것과는 반대다.

 

10. 정도가 심하지 않다거나 증거가 불확실해서 신고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신고 뒤 책임이 부담된다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 부담 내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임이 결국 전문가로서의 소극적 판단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는 '책임이 부담된다'는 솔직한 태도보다 실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전문가로서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며 아동 학대를 신고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해버리기 때문이다.

 

11. 한 사람의 죽음에도 사회적 의미와 맥락이 숨어 있다. 하물며 수백, 수천 아이들의 죽음은 어떠하겠는가?

다른 사회에 비해 한 사회의 아이들이 더 많이 죽어나간다면, 분명 그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거나, 질병에 대한 예방 및 피료를 못하거나, 전쟁 또는 내전이 있을 수 있다.

자연 환경에서 비롯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럴 때조차도 사회적 의미와 맥락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할 수 있다.

 

12. "빈곤과 아동 학대 발생의 상관관계가 있는 건 맞지만, 저소득층에서만 일어난다고 보는 건 오류다.

저소득층은 아무래도 아동보호 관련 사회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사회복지사 등을 통해 더 많이 신고되는 특징이 있다."

즉, 담장이 높은 집에 사는 아이들은 설명 학대를 당했더라도 주위의 시선이 닿기 어렵다.

반면 담장이 낮은 집에 사는 가난한 가정은 눈에 더 잘 띄기 마련이다.

 

13. 아동 학대를 줄이기 위해서 아동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런 논리를 펴기에 앞서 아동은 조건 없이 존중받고 행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정에 있는 부모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14. <아동 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클림비 보고서이고 싶었고, 생텍쥐페리의 노래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획은 우리보다 유서 깊은 해외 언론의 어떤 전례도 참고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는 한국에서만 가라앉았으며, '어제'는 방관하고 '내일'엔 필시 잊는 현실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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