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20.09.19~09.20
에세이 |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종이책 | 추혜인 | 심플라이프 | ★★★★★ |
후기 '아직도 왕진하는 의사가 있다고요?'
모든 환자가 차별없이 진료받는 의원을 만들기 위해 살림(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휠체어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건물을 찾아 수백여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개원을 하고, 동네 주치의가 된 후에는 병원에 방문하기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왕진을 다닌다.
매주 수요일이면 따릉이에 왕진가방을 싣고 언덕길을 오르는 주치의, 추혜인 의사의 이야기이다.
책에는 페미니스트이자 의사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성차별 (유독 여성환자에게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남자의사,
비혼여성의사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시선 등), 신체자유도에 따른 의료 접근의 한계점 등 현장에서 직접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있다. 여성이라서, 의사라서 겪은 일을 여성으로서, 의사로서 이야기한다.
병원이 행선지임을 밝히는 순간 '간호사세요?'라는 말부터 나오는 성별화된 직업이라던지,
비혼여성이 어디서 아이 심리를 이해하느냐, 아이는 키워봤느냐 하는 전문성에 대한 불신이라던지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하나같이 남자, 남자 의사라면 듣지 않았을 괴상한 시선 뿐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20여년간 페미니즘과 함께 싸운 굳건한 여성이다. 궤변의 오류를 하나 하나 짚어가며 조곤 조곤 반박한다.
그런 작가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충이 있었으니, 신뢰받는 의사였던 그가 살림에서는 환자들의 불평불만을 많이 듣는 것이다.
쉽게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환자들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
이제는 그 모든 말들이 주치의를 향한 환자의 신뢰라는 사실을 안다. 이 사람이 내 의사라는 확신이 뒷받침된 말이라는 것을 안다.
불평과 불만은 그것을 들어주리라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 말하게 되니까.
결국 조합을 유지하는 버팀목은 의사의 신뢰, 환자의 신뢰. 즉, 상대방을 향한 "신뢰"이다.
우리는 신뢰가 사라진 현장을 몸소 겪거나, 실시간으로 지켜 보았다.
성별, 출신국가, 계층에 의한 차별로 인해 환자가 병증을 숨기거나, 여러병원을 전전하거나,
의사가 과잉진료를 하거나, 환자의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그러다보니 환자는 의사에게 의지를 하지만 신뢰하지 않는,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지만 진심으로 보살피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의료제도의 문제점이 원인 중 하나이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환자와 의사 모두가 상대방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당신의 말과 행동에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신뢰의 제스처를 보이는 것.
그리고 살림의원은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곳에 다니는 환자들은 홀로 내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다.
병으로 인해, 노환으로 인해 통원이 불가능해질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릉이에 왕진가방을 싣고 나타날 의사가 있음을 알기에. 환자에게 귀 기울이는 의사가 있음을 알기에.
고령화 사회가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미래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왕진을 하냐는 말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이가 여기에 있다.
불안정한 노년이 아닌, 여성도 남성도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 그는 오늘도 따릉이를 타고 달린다.
+) 노환이나 병으로 거동이 힘든 환자, 24시간 내내 간병해야하는 보호자.
'아프면 언제든지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접근성이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없는 게 아니다" 요즘에도 왕진이 필요하냐고요? 세상에는 여러 이유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답니다.
편협한 시각으로 자기위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 작가 인터뷰. 인터뷰 내용 너무 좋은데, '페미니즘'이랑 '쿠바'에 버튼눌린 댓글 오조억개있다.
한국같은 세계최고수준의 의료 선진국이 후진국 쿠바를 왜 롤모델로 삼냐는 둥, 왕진가면서 자전거 타는 거 보니 한가해보인다는 둥.
기사 대충 읽은 게 눈에 띄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기사에서 차별을 이야기한다. 창피하네....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차가 다니기 힘든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환자의 주거상태'와 '거동상태'를 복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환자를 좀더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유독 구린 댓글이 달린 이유 중 하나가 '가정'의학과 의사이기 때문인 듯한데,
'가정'만 들어갔다하면 비전문적으로 보는 시선 너무 우습구 유치하다.
n.news.naver.com/mnews/article/
따릉이 몰고 찾아온 주치의 “코로나 이후 왕진 신청 늘어”
“어머, 콜레스테롤 그렇게 높으면서 여기(치킨집)서 만나면 어떡해요!” “아이고~ 우리 주치의 선생님, 요즘 산에 잘 안 오시던데 좀 걸으세요~.” 퇴근길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의사와
n.news.naver.com
인상깊은 구절
1. 이 세상에서 저를 여자라고 말하고 그렇게 봐주는 곳은 오로지 여기밖에 없어서요.
그래서 죽기 전까지는 여기 계속 오고 싶어요.
2. "환자분이 예민한 거예요."라거나 "스트레스 때문입니다"라는 설명은 함부로 쓰는게 아니다.
어떤 환자분은 "그놈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설명, 지긋지긋해요"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글썽거리던 그녀의 눈물로부터, 검사결과는 환자의 신체조건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또 배운다.
그것이 아무리 '정상적인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3. 몸과의 그 많은 시간들을 거치고서야 내가 생각하는 몸과 내 실제 몸 사이에서 합일점이 찾아지기 시작했다.
몸으로 해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본 후에야, 서서히 내 안에서 화해가 일어나고 있다.
4. 가까이 있는 것들이 덜 보이기 시작하니, 바늘귀에 실을 꿸 때 불편하기는 해도 좋은 점들도 생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줄어드니 멀찍이 바라보는 시간을 더 가지게 된다.
들여다봐야 보이는 세세한 흠결 따위 찾을 생각 말고, 고개를 들어 멀리 보고 크게 보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5.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작은 제스처는 많고도 많다. 팔짱을 끼거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환자에게서
살짝 멀어지거나,혹은 작고 미묘한 한숨이나 지친 듯한 표정. 정말로 작은 제스처로도 환자들은 '아 더이상은 얘기하면 안되겠다',
'이 의사와는 말이 통하지 않겠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중략) 그래서 결국 환자들은 최고 실력을 가진 의사가 아닌,
나의 고통과 상처에 공감해주는 의사를 주치의로 만나고 싶어 계속 찾아다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6. 사실 의료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자들이 많다. 의료만이 아니라 보건, 돌봄까지 확장하면 더욱 여자들이 많다.
병원 노동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여자다. 그러나 의료는 '남자', 좀 더 정확하게는 '남자 의사'로 상징되어 있다.
특히나 수술과 수술실은 정말 '남자의 공간'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그러나 수술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체 숫자를 놓고 보면
여자들이 더 많다! 그런데도 그곳은, 피를 보는 수술과 수술장은 마치 '남자의 영역'처럼 여겨지곤 한다.
남자의 공간으로 생각되는 만큼, 실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노동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7. "언니들, 내 사주에 남자가 없대요."
"응, 그러니까 결혼할 팔자가 아니라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결혼을 하든 말든 별 상관 없대요. 설사 결혼을 한다 해도 남자가 내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대요.
그게 사주에 남자가 없다는 의미래요."
한 언니가 정색을 했다. "혜인아, 그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여자라면 다 그래.
비혼이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어. 우리 여자들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 남자는 없어."
8. 남자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심장내과로 보내지고 여자가 가슴이 아프다로 하면 정신과로 보내진다는 얘기는
자조적인 농담이 아니다. 남자 의사들이 여자 환자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의사들이 남자 환자의 통증에 비하여 여자 환자의 통증을 더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경향은 남자 의사일수록 두드러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9. 여자들은 병을 앓는 순간에도 '여성성'을 잃지 않도록 영화나 소설 속에서 그려졌다. 암 투병이 얼마나 치열한 투쟁의 현장인데,
어떤 암을 앓을지 지정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생명력을 박탈당하고 초상화처럼 박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여주인공의 이미지들이
실제 투병 중인 여성들에게 자기 신체 이미지에 대한 훼손으로 작용하고, 생리적인 현상들을 잘 호소하지 못하게 하는 굴레로도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은 심지어 아플 때조차 여성스럽게 아파야 한다니!
10. 여성들이 겪어내야 하는 힘든 순간에 대해서만 어찌나 '자연화'하려는 시도들이 넘쳐나는지. 임신, 출산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둥, 생리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둥, 심지어 여자는 자연 미인이 최고라는 둥...!
신이 주신 생생한 고통, 그 삶의 충만한 의미는 너나 온전히 느끼시라고!
11. 공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증의 이유를 찾아내 이름 붙이는 건, 그래서 환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저누는 건 오직 의료인만이 할 수 있다. 통증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는 '적적한 진단적 공감'이 필요한 때가 있다.
12.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나 끊었을 때나, 같은 것을 욕망한 셈이다.
내 말에 적당한 힘이 실리는 것,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는 것.
13. 그는 '아이가 없는 의사'라고 하지 않고 굳이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젊은 여자'라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아이를 낳아본 여성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말을, 나는 사실은 여성혐오라고 생각한다.
여자로서 응당 해야 할 경험인 임신, 출산, 육아를 안 해본 여자라서 뭘 모른다는 말은,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젊은 여자에게도,
아이를 하나밖에 낳아보지 않은 여자에게도, 아이를 낳지만 했지 제대로 돌보지 못한 다른 워킹맘에게도,
비슷한 어투로 비슷한 비난이 될 것임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14. 예전엔 교과서와 논문을 통해 배우는 줄 알았다.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에게 물려받는 것이 의학 지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두 환자들에게서 다시 배운 거다. 감기도 모르던 내가 이제 감기는 조금 알겠네 싶은 것은,
우리가 진료실에서 함께 보내왔던 지난 시간 덕분이다.
15. 당신이 혹시 나의 진료를 마음에 들어했다면, 그것은 내가 페미니스트 주치의이기 때문입니다. 살림의 조합원들이 자주하는
말마따나, 페미니즘만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페미니즘 없이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키워드: 왕진, 페미니즘, 살림의원, 의료협동조합, 따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