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147.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20.09.17

독서의 흔적 2020. 9. 18. 14:21

인터뷰집 미래가 물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냐고
종이책 헬북 헬북(독립출판) ★★★★★

 

후기 '미래로 가는 계단'

“‘미래지금 잠깐보자고 부르는데 다녀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완성한 책이다.”

'당겨 만난 미래들' 그리고 '다가가는 현재'.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이상한 사람, 분노하는 사람, 분주한 사람, 춤추는 사람, 가만히 있는 사람, 쪼대로 사는 사람.

매력도 개성도 뚜렷한 여섯, 아니 일곱사람의 '독립' 이야기.

가정과 직장에서의 독립, 혹은 다수에서 소수로 향하는 독립. 여성, 소수자, 출판인, 서점인에게 독립이란 무엇인가.

매력있는 사람 다음에 또 매력있는 사람이 나오는 꾸밈과 숨김이 없는 맑은 글.

인터뷰를 하나 둘 읽다보면 작가가 그리는 미래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내 책내 삶을 만드는 주체적인 삶. 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나만의 공간과 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간간히 튀어나오는 가감없는 표현과 호탕한 웃음을 통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사이에 맴도는 유쾌한 분위기가 손끝으로 전해진다.

(평소에는 꺼리는 표현이지만) 진라면 순한맛으로 시작해서 불닭볶음면 매운맛으로 끝나는 인터뷰집.

탁월한 배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제목, 그 속의 진중한 사람들(확고하게 자기중심이 있는 인터뷰이들...완전 멋있다).

읽는 내내 안미선 작가의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가 생각났다.

"용감한 이야기들이 모일 수 있는 드넓은 광장을 우리는 다 함께 일궈 내야 한다." (나는 이 책의 말미를 정말x1000000 좋아한다.)

미물잠시의 모든 이들이 일궈낼 광장의 풍경이 기대된다.

더 이상 빙글빙글 원 안에서 도는 일 없이, 양쪽으로 오갈수 있는 길이 끝없이 확장될 것만 같다.

부디, 독립한 여성들의 광장을 드넓혀주시길...

(움직씨의 인터뷰를 빌려오자면)편집에 능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쓰기에 능한 사람이 있다더니

헬북님은 두가지 모두 능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확신합니다.

기대한만큼,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책이었고, 팬이 되어버렸다.

다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다음 작품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이 글 맛으로 에세이집 하나만 내주셨으면 좋겠다. 미물잠시vol.2면 더 좋고. (사실 뭐든 좋아요. 네, 네.)

그 어디서도 듣지 못할 여성 독립 오프 더 레코드. 미래와 현재의 만남 아주 환상적이야.

 

+) '쪼대로'가 뭔지 알 것 같은 지방인. ''가 주는 그 느낌적인 느낌. 책방 토닥토닥 김선경님의 인터뷰 아주 강렬했다.

책방 토닥토닥, 레드북스, 곰곰책방 꼭 가봐야지. 파시클, 책덕 책도 읽을거야. 움직씨 책은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모두의 미래가 더 멀리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 흔적배 올해의 제목상. 이보다 더 멋진 제목 있을 리 없다.

 

인상깊은 구절

1. '미래'가 '잠깐' 보자고 부르는데 다녀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완성한 책이다. 그러니 당신도 너무 본격적으로는

말고, 지겨워 죽겠는데 잠깐 좀 나갔다 오지 뭐, 하는 마음으로 이 이상하고 멋진 미래의 이야기를 읽어주면 기쁘겠다.

 

2. 내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당신들의 오늘 덕이다.

 

3. 싫은 것을 마음을 다해 싫어하고, 싫음을 표현하고, 싫은 것으로부터 안간힘을 다해 멀어지는 연습을 이제는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다 써진 책같은  하루가 찾아오는 견딜 수가 없어졌을때, 출판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그의 말처럼,

나도 나의 견딜 수 없는 어떤 순간을 다독여서 보내버리지 말고 꽉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

 

4. 다들 끝이라고 말하는 어떤 곳에서, 아니 반드시 그 지점에서만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것은 둘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에 당도할지 모르겠지만, 가볼까?

눈빛을 건넸을 때 환하게 웃어주는 상대가 없다면, 끝은 그냥 끝일 것이기에.

 

5. 흔히 모두가 주목하는 화려한 시작 같은 것을 꿈꾸지만 사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때는 이런 때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때. 내가, 혹은 우리가 자신의 숨소리에, 마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때.

 

6. 우리는 흔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하는 어떤 이들에게 좀 더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기를 요구하곤 한다.

그리고 그게 '청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발화자'를 위해서라고 충고한다. 너의 분노가 더 잘 '팔리려면',

언어를 좀 더 대중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하지만 매끈하게 다듬어서 팔 수 있었으면 그건 애초에 분노가 아닐터이다.

 

7. 요새 퀴어 친구들 만나면, 퀴어는 원래 거리를 두고 있는 존재라는 걸 코로나 이후에 새삼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뒤집어 말하면 사회에서 거리두기를 당하고 있는 존재일 수도 있고. 그리고 비건 역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공간이 사실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고기밖에 없는 식당은 갈 수 없고 가지도 않는 것처럼. (이런 사회적 거리감은) 책하고도 연관이 있다.

(중략) 나 같은 사람들이 편하게 자유롭게 올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게 정말 좋은 일이고, 그런 공간을 늘려나가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책방.

 

키워드: 독립, 여성, 독립출판, 독립책방, 책덕, 파시클, 움직씨, 책방 토닥토닥, 책방 곰곰, 레드북스
꼬리(연결고리):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우리는 드넓은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을 위한, 여성만의 공간. 이 토대를 다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인터뷰를 위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