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101. 1995년 서울, 삼풍-20.06.29

독서의 흔적 2020. 7. 1. 09:42

사회 1995년 서울, 삼풍 전자책 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동아시아 ★★★★★

 

후기 '재난은 모두의 기억이어야 한다'

삼풍백화점 25주기.

내가 태어나기 전의 먼 과거인 듯 했는데, 25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우리는 우연히 현 시점에 태어나 우연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불현 듯 스쳐지나간다.

과거의 대형사고들이 생각만큼 오래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그때와 비교해 별반 달라진 것 없어보이는 현실에 의문을 갖게 된다.

국민들은 삼풍백화점 이후로 재난 발생시 구조체계가 구체적으로 갖춰질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당시 정부의 수습은 과거의 재난들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삼풍백화점은 예견된 인재였다.

불법적인 용도변경, 그에 따른 건설설계 변경, 무분별한 자재적재, 증축을 위한 과도한 기둥 삭제,

임원들과 구조사의 안전 불감증 등 다양한 원인이 한 데 합쳐 총체적인 재난상황을 만들낸 것이었다.

당시 삼풍백화점을 조사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1년 후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5년이나 버틴 것이 용할 정도의 상태.’ 라고 결론을 내렸다.

더 많은 명품을 입점하고, 더 많인 고객을 유치하고, 더 넓게 증축해야 한다.’ 는 이준회장의 욕심은 결국

사망자 502, 실종자 6, 부상 937명이라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초래했다.

이준회장은 대국민 사과 당시에도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보상을 위해 삼풍백화점 부지를 팔아야한다고 하자 내가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그러느냐. 나는 서명 못한다.”는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인간인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도 백화점이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미필적 고의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처벌은 업무상과실치사에 불과하다.’ 는 판결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 이준을 통해 뇌물을 받은 공무원과 그 외 다른 관계자들도 피해에 비해 아주 가벼운 형벌에 그쳤다.

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는 그렇게 제대로 처벌받는 이 하나없이 흐지부지하게 마무리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었어야 할 피해자들은 사고현장에서 동떨어진 위령탑을 묵은 일 해치우듯 떠넘겨받고 뒤로 밀려났다.

당시 언론은 피해자들을 향한 동정여론을 보상을 노리는 자들이라는 마녀사냥으로 이끌었다.

(각종 재난 사고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아주 낯익은 행태다)

 

한 나라의 국격과 국민의 위치는 재난사고를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면 판단할 수 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책임론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 피해자는 자연스럽게 소외되었을 것이다.

세월호 또한 마찬가지이다. (삼풍백화점 유가족들이 세월호를 자주 언급하기에 나도 언급해보고자 한다.)

사고 발생 후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박근혜는 구명조끼를 착용했는데 왜 구조를 못합니까?’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내밀었다.

심지어 언론은 세월호 침몰.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발표해 구조에 혼선을 불러왔다.

그렇게 정부가, 해경이, 언론이 각종 관계부처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구조는 뒷전이 되어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또 실질적인 구조는 어떠한가.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민간잠수사, 자원봉사자들 고생만 더해졌다.

1995년의 삼풍과 2014년의 세월호의 정부 대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재난을 묻다>에서는 이것은 예견된 인재로 단순하게 축약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수습하지 못하는 구조상의 문제라고 한다.

관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없는 법적한계와 과거보다 퇴보한 듯 한 현재. 그 사이 쓰러져 간 수많은 피해자를 바라본다.

책임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그늘로 내몰렸다.

그리고 국민들은 저마다 바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관심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물론, 이는 국민의 잘못이 아니다.)

 

"오래된 기억을 쉽게 지워버리곤 하는 우리들 앞에 놓인 이 기억이 더 이상 낡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억을 위해선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하지 않은 기억은 개인의 기억으로 남게된다. 재난의 기억은 모두의 기억이어야 한다.   

백서 제작시에는 생존자와 유족이 참여하여 함께 제작하고, 이를 모든 국민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에게 벌어진 불행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한 사고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정부는 재난의 화살이 새로운 피해자를 찾지 않도록 더 열심히 감시해야만 한다.

무리하게 증축하는 불법 건축물이 없는지, 통행을 방해하는 불법주차는 없는지, 사고를 야기하는 위험한 작업현장은 없는지.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방지해야 비로소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재난을 향한 진정한 보상.

그것은 같은 사고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설령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에 그치도록 하는

빠른 수습을 위한 노력이 아닐까.

 

+) 삼풍 당시 드러난 몇몇 본성은 추악 그 자체였다.

봉사자가 팬티를 입고 들어가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명품관 옷을 여러겹 껴입고 나왔다.’, ‘봉사자 가방을 열어보니 시신 일부와

손가락들이 있었다. 희생자의 값비싼 물건을 노린 행동이었다.’ 당시 삼풍이 최고급 백화점이었기에 사고현장에 도둑이 틈새를

노렸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정성을 생존자 찾는 곳에 할애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될 수 있었을 텐데...

누군가는 드링크제를 마셔가며 구조활동에 참가했고, 누군가는 웃으면서 귀중품을 훔쳐갔다는 상반된 이야기를 접하니

인간의 본성이란 대체 뭘까... 싶은 물음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1. 저는 무슨 점검이 있거나 경미한 누수가 생겼나, 이 정도로만 생각했지 건물에 금이 가서 무너질 정도였다는 건 상상을 못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때 이미 5층에 금이 가기 시작했더라고요. 눈에 띄게 금이 간 쪽만 영업을 중단하고 멀쩡한 쪽은 영업했던 거죠.

 

2. 당시 심정은 끔찍하다, 무섭다 이런 감상보다는 일단 저 건물이 무너진 게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왜 무너졌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어요. 일단은 기자니까 기사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으로 달려갔거든요. (중략) 참혹하다 이런 느낌은 그 다음에 들었고,

저게 왜 무너니니, 저 어마어마한 사건이 왜 벌어졌지 하는 놀라움이 컸습니다.

 

3. 폴리스라인을 칠 수 밖에 없던 것이 이 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거예요. 그때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은 정말 생명을 담보로

들어간 겁니다. 그 벽이 바깥쪽으로 무너지느냐, 안쪽으로 무너지느냐 두 갈래 위험성이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4. 뭔가 아니었던 게, 첫날 제가 인명 구조 활동할 때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들 다 확인했거든요. 며칠 안 가 차창이 다 깨져

있었어요, 트렁크도 열려 있고요. 18만원 정도 되는 고가의 옷들이 나뒹굴고 있었어요. (중략) 장비를 가지고 왔다는 사람들도 배낭

열어보면 구조장비가 있는 게 아니고, 고가 옷,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요. 또 훼손된 시긴, 잘린 손가락도 들어 있었어요.

사망자가 끼고 있는 반지를 빼가려는 거죠. 도저히 구조대라고 볼 수 없었어요.

 

5. 제가 볼 때 자원봉사들 중 3분의 1가량은 절도 목적으로 합류한 사람들이었어요. 삼풍이 워낙 고급 백화점이니까요.

실제로 당시 기록을 보면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절도범들이 서초경찰서에 체포돼 형사 처벌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기자들 몇몇도 자원봉사자로 가장했어요.

 

6. 우리나라에 총체적인 문제였죠. 폴리스라인도 설치하지 않고, 현장 진료소도 없고, 컨트롤타워도 없었어요. 119나 병원 앰뷸런스,

사설 앰뷸런스가 환자 1명이 구출되면 아비규환이 돼서 서로 이송하려고 했죠.

 

7. 시신에 대한 어떤 예의를 지킬 수가 없는 상황도 안타까웠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지금 사건 현장에 가면 최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시신을 처리하는데, 그 당시에는 조각나서 나오는 시신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너무나 많은 시신들이 그랬기 때문에 시신에 대한

예의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늘 가슴이 아팠어요.

 

8. 조사 활동 중, 매스컴에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비전문가들이 나와 여러 논평을 하는 걸 보는 게 불편했어요,

, 문제가 많구나하고 느꼈고요. 나중에 저희 쪽 원인규명 발표를 보고 자기가 한 발언을 어떻게 책임질 건가’.

, 저런 분들이 있어서 큰일이구나느꼈어요. 그래서 저희는 매스컴 또는 대국민홍보용 소통채널을 서울시 한군데를 통해

일원화하기로 했어요. 최대한 다른 얘기를 자제했고요.

 

9. 저는 76월을 구형할 수밖에 없잖아요. 정말 가슴 아팠어요. 그래서 결심공판 때 살인죄를 검토했으나 법리상 무리인 거 같아

살인죄로 기소하지 못하고 76월밖에 구형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프타그렇게 말했던 게 참...

법의 미비라고 봐야 할까요.

 

10. 참사 이후 전 국민이 응급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사고 다음 해인 19962월부터 응급의학 전문의 제도가

행됐습니다. 구급차도 119로 일원화됐으며, 응급처치 전문인력을 대학에서 양성하기 시작해서 응급구조사 국가 자격증도

생겼습니다. 대형 재난을 계기로 응급의학 분야에 일종의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한 겁니다.

 

11. 하고 싶은 얘기는 정부한테 하고 싶죠. 그런 대형 사고가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이 났어요, 그것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잖아요. 공무원들이 진짜 소신을 갖고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 무슨 공연장 사건

(2014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있었잖아요? 그런 사고가 계속되는게 저는 진짜 너무 분노스럽다, 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12. 당시 저희는 다른 행동은 안 했어요. 그저 빨리 시신 좀 수습해달라그랬는데 일부 방송에서 쟤네들 보상금을 많이 받으려고

저렇게 길 막아놓고 단체행동을 한다고 왜곡보도했어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들도 단체행동을 했잖아요, 그런데 또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경험한 사람으로서 저는 저 사람들(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보상금을 더 요구하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왜 저렇게

생각할까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3. 될 수 있으면 유가족과 생존자분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분들이 또 사회생활을 할 수가

있거든요. 되게 힘들어요. 생존자분들도 저 사람들 삼풍백화점 유가족이야. 저 사람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야아니면

저 참사에서 구조된 사람이니, 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돼절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4.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한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 살자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외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중략) ‘그러나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요.

그러나다음에 올 단어는 10년 후 제가 만들어가야겠죠. 그러나 어떻게 됐더라하고. ‘그러나라는 단어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15.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

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16. 세계적으로 관심이 있는 곳이니 귀빈들이 대거 참석하였는데 앉는 자리를 놓고 서로 시비를 하고 테이프 절단을 하는 데도

서로 참여하겠다고 난리를 떨어 혼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난 앞에서 의전부터 신경 써야 한다는 이 사회의 어이없는 양상은

본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

 

17. 삼풍백화점 참사로 숨져간 이들은 단지 희생자라고만 불려서는 안 되며 고인들 저마다의 삶의 기억들이 개별적인 존재로서

다시 기억되어야 한다. 그 장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러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상흔을 안고 사는 사람들 역시 단지

생존자로 불리거나 심지어 의지의 영웅처럼 국가주의적으로 호명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을

어루만져야만 한다. 모두는 각각 소중하고도 고유한 개별의 존재들이다. 그 상처의 무늬도 다르고 이른바 트라우마의 그늘도 다르며

그것을 잊거나 혹은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다르다. 비록 고통스러운 일이겠으나, 그 각각의 기억들을 회복하고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마음속 말들을 기록해야 한다. 그 상흔들을 기억해야 한다.

 

18. 숨고를 새도 없이 달려드는 일상을 탓하며 오래된 기억을 쉽게 지워버리곤 하는 우리들 앞에 놓인 이 기억이 더 이상 낡지 않기를

바랍니다.

 

키워드: 삼풍백화점,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참사 25주기
꼬리(연결고리): 재난을 묻다

-재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를 컨트롤 하지 못하는 구조상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