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토선생 거선생-20.06.26

| 그림책 | 토선생 거선생 | 종이책 | 박정섭(글) 이육남(그림) |
사계절 | ★★★★★ |
후기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은 독자의 몫'
이야기를 부수는 이야기.
달리기 경주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는 <토끼와 거북이>를 기억하시나요?
그렇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도 알고 계시나요?
<토선생 거선생>은 경주에서 진 토선생이 명예회복을 위해 재도전을 하는 이야기이다.
단색의 배경에 먹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기법인 백묘화를 활용한 이 그림책
곳곳에서 '김홍도의 풍속화', '인왕제색도'를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 현대식 문물이 숨겨져있는 것은 덤.
책가도를 형상화한 표지의 이슬처럼, 아이패드, (무려)5G 스마트 폰을 지나,
책장을 펼치면 툇마루에 드러누운 거선생이 포켓몬 도감을 읽고있다.
'씨름'을 재해석한 그림에서는 한 손에 폰을 쥐고 있는 구경꾼을 발견할 수 있다.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하는 듯한 <토선생 거선생>은 이야기 속으로 독자와 작가를 끊임없이 개입시킨다.
"작가 양반 독자 양반 우리 좀 살려주시게. 우리가 죽으면 이 이야기도 끝이란 말이오."
토선생과 거선생이 불의의 사고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작가는 토선생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해답을 요구하면서, 결말을 계속 보류한다.
사실 답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결말은 토선생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고 느림의 자웅을 겨루던 토선생과 거선생은 책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더 넓은 곳으로 떠난다.
어디로? 끊임없는 대결구도와 경쟁을 떠나 각자의 개성으로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틀을 깨부수는 이야기이다. 동시에 '이야기는 지면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도 깨졌다.
새하얀 지면이 펼쳐짐과 동시에 상상의 나래가 넓게 펼쳐진다.
'등딱지는 어떻게 쓰는거지?', '거선생은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둘은 어디로 갔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매력넘치고 재미난 그림책이었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가 뒷표지를 본다면, 다시 앞표지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은 작가도, 등장인물도 아닌 독자의 몫이다.
+) 문득 든 생각... <토끼와 거북이>도 그렇고 <별주부전>도 그렇고
토끼vs거북, 토끼vs자라 소재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극과 극의 대상이라 이야기 구상하기에 최적이라서 그런가.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토끼와 거북이가 협력(?)하는 <토선생 거선생> 너무 매력있네ㅠㅠ
키워드: 토끼와 거북이, 토선생 거선생, 경주, 등껍질, 백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