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88. 제법 빵빵한 날들-20.06.09

독서의 흔적 2020. 6. 9. 13:40

에세이 제법 빵빵한 날들 종이책 민승지 레몬 ★★★☆☆

 

후기 '못난 빵도 맛있어요'

기대했던 것과 다른 책을 만날 때면 많은 생각이 뒤따른다.

내가 너무 기대했던 것일까, 기대치가 높아서 책의 가치를 몰라보는 것일까, 솔직한 후기를 남겨도 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책에 대한 안좋은 기억만 남게된다.

그런 책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이 책의 좋은 점만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따지고 보면 책 소개를 자세히 읽지않고, 막연하게 빵에 대한 에세이일 것이다라고 넘겨짚은 내가 제일 큰 원인이다.

이 책은 빵이 아니라, 빵을 좋아하는 작가의 일상에 대한 에세이이다.

왠지 <제법 안온한 날들>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은 잠시 뒤로 제쳐놓도록 한다.

 

포켓몬 띠부띠부씰이라던지, 매점 햄버거빵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 학창시절에 향수를 느끼게 된다.

희귀한 스티커를 모으겠답시고 500원만 생기면 동네마트로 달려가, 스티커만 빼내고 빵은 쓰레기통으로 버리던 시절.

매점 앞을 가득 메운 친구들을 제치고 얻은 햄버거 빵을 들고 의기양양했던 시절.

그 시절의 어린 나만이 느낄 수 있었던 묘한 감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성을 잘 아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그때가 그리워서 펭수빵을 사보기도 하고, 편의점 햄버거를 사보기도 했지만 그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좋은 스티커를 갖고 싶었던 묘한 경쟁심, 고단했던 학교생활 사이에 맛보는 찰나의 행복함이 추억의 구성요소 였나보다.

돌아올 수 없는 감성을 품고 있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그것이 행복한 추억일지라도.

 

작가는 '못난' 빵에 애정을 보인다. 팔리지 못한 못난 빵은 맛이 없어서 남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예쁜 빵들에 비해 조금 못난 모습을 하고 있어서이다.

못난 빵은 자연스럽게 시식용 빵으로 조각조각 나뉜다. 조각을 베어문 손님들은 저마다 맛있다, 맛없다 한마디씩 얹는다.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두 손으로 못난 빵과 예쁜 빵을 만들어 낸 제빵사의 몫이다.

나는 제빵사였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남들보다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 두 손에 가득담긴 애정을 빵에 쏟아부었다.

다음날 출근해보면, 미처 다 팔리지 못한 못난 빵들이 파란 봉지에 가득 담겨있었다.

그럴수록 더 빵을 '예쁘게' 만드는 것에 집착했다. 다음날이 되면 '덜 예쁜' 빵들이 남아있었다.

그 후 나는 예쁜 빵이 아닌,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빵들을 내 아침점심으로 먹었다.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다면, 내가 선택하면 된다. 못난 빵들의 존재의미를 내가 실현시켜주면 된다. 맛있으니 됐다.

 

우리는 '더 예쁜 것', '더 보기 좋은 것'에 손을 뻗는다.

단순히 '못나서' 선택받지 못한 남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가려운 부분을 작가가 상기시켜주었다.

최근들어 몇몇 서점에서 배송된 책들 상태가 영 좋지않다.

찢겨진 책등, 구겨진 표지. 신간이지만 신간이 아닌 모습으로 내 손에 들어왔다.

몇 번 겪고나니 이제는 초연해지는 것이, '그래 나는 흔치 않은 아이들을 얻은 것이다. 이 책들은 오히려 특별하다.' 는

생각을 하곤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못난 모습이라고 하여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못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세상의 기준에 연연하지 말자. 틀에 딱 맞출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니까.

내 얼굴의 컴플렉스를 '귀여운 문신이네요'라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순간 그간 쌓여왔던 모든 감정이 눈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나는 별모양 문신을 갖고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초상화를 그릴때는 오히려 이쁜 사람이 그리기 힘들다고 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못남이 특별함이 된다.

자신이 못나보이는가? 좋다.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초상화를 지닌 사람이 되었다.   

 

쓰고보니 이것은 내 에세이인가... 뭘 쓰고 싶었던 것인가... 빙 둘러왔더니, 책이 아닌 내 이야기가 길어졌다. 

뭐, 오늘만큼은 특별한 후기를 작성한 셈 치자.

 

인상깊은 구절

1.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내가 제일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부터는,

'제일 좋아하는 일'이 나를 가장 힘들게했다.

 

2. 누구나 남이 몰랐으면 하는 콤플렉스가 하나쯤은 있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콤플렉스를 고백하는 사람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전혀!"라고 오버하며 손잡고 응원하고 싶다. '나처럼 부끄러운 점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반갑고,

용기 내 고백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니까.

 

3. 지금보니 엄마의 구멍은 꼭 나만 한 크기였다. 시를 쓰고부터 엄마는 더 이상 구멍을 메우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제 엄마는 엄마의 구멍으로, 엄마의 결핍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시를 쓴다.

 

4. 남이 너와 같은 상태라고 생각했을 때 상대에게 해줄 법한 말을 자신에게 해줘.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야박할 때가 많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