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69. 푸른 눈의 증인-20.05.18

독서의 흔적 2020. 5. 19. 11:15

인문/사회운동 5.18 푸른 눈의
증인
종이책 폴 코트라이트 최용주 한림출판사 ★★★★★

 

후기 '지겹다는 말이 의미가 없어질때까지'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

어차피 읽으려고 했던 책이지만, 우연히 접한 댓글 하나가 '이 책은 반드시 5.18에 맞춰서 읽자'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지겹다'는 말은 적어도 우리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다.

숱한 증거는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고, 애써 꺼내온 진실마저 오해를 뒤집어 쓴채 방치당하고 있는데, 지겹다라니.

이 얼마나 안일하고 무책임하며 잔인한 말인지. 역사를 잊은 대가를 치룰 각오가 되어있는가.

공공의 적을 만들어 권력을 견고히 하려는 움직임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많이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갖는 의미가 크다.

북한을 빨갱이라 칭하고, 미국을 반기는 그들은 미국인이 진술하는 이 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저자는 말한다. "나는 우연히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태어난 특권층이다. 광주에서 태어났었다면 나 또한 그리했을까."

제 3자의 눈으로 본 객관적인 그날의 진실은 어떠했는가.

2019년, 책 집필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폴은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가 부러 이책을 힘겹게 집필한 것은

한국의 일부가, 그리고 세계가 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라는 특권 덕분에 생존한 그는, 이 진실을 알릴 의무가 없음에도 기꺼이 펜을 집어들었다.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폴 코트라이트.

그는 나환자들을 돕기위해 호혜원이라는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교육과 건강검진을 위해 방문했던 서울에서 시위대를 보게된다.

당시에는 그것이 광주로 번져나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호혜원으로 돌아온 폴은 나환자 두명의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함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 청년에게 곤봉을 휘두르는 군인을 마주친다.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버린 청년을 뒤로하고 폴과 일행은 버스에 오른다.

친구인 팀을 통해 들은바로 그날 광주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희생이 있었다고 했다.

행여나 무고한 시민이 다칠새라, 팀이 군인과 시민의 사이를 갈라놓느라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돌아오는 버스에서 폴은 생각했다. '나도 팀처럼 해야했을까. 팀이라면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5.18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척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낀 폴과 평화봉사단원들은 '이것이 바깥세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알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두 눈으로 본 사실만을 전달해야만 한다.'

라며 각자의 위치에서 이 모든 상황을 전국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폴에게 주어진 임무는 '산을 넘고 서울로 넘어가 대사관에 이 모든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고, 택시를 타고 광주를 넘어, 대사관에 이른 폴.

하지만 누구도 그를 맞이하지 않았고, 진실은 폴과 친구들의 두눈과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았다.

 

읽는 동안 '왜 이제서야...'라는 마음이 수십번 고개를 들었지만, 우선은 살아야 했다는 그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도청에서 청년들과 밤을 지새우던 데이브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태가 끝날때까지 집에 머무르겠다던 주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써왔던 팀 원버그의 명복을 빈다.

인종을 떠나 단 하나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광주와 함께했다.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모르는 그들의 눈에도 이 참혹한 학살은 잘못된 것임이 뚜렷하게 보였으리라.

국가에 의해 두 눈이 가려졌던 국민들은 광주와 외국인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 무게를 가벼이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도 곳곳에서 또다른 광주가 생겨나는 가운데,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정말 좋은 책이었는데, 선교사의 일지가 꼭 부록으로 들어가야만 했을까라는 불편한 의문이 남는다.
더 큰 희생을 낳을수도 있었다며 군인들의 자제심을 칭찬하고 있었고,

이들을 굽어살핀 하나님이 있었기에 자신들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그 일지 말이다.

심지어 그는 민간인을 향한 성폭력이 있었다는 증언조차 진실이 아닐거라 믿고있었다.

너무도 당당한 말에, 혹시 내가 잘못알던 사실이 있었나 싶어 다급히 자료들을 찾아헤맸다.

미국인이라는 같은 특권아래 너무도 상반된 태도와 입장을 보면서 삐져나오는 실소를 멈출 수가 없다.

그는 모르는 것일까 아님 외면하는 것일까.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은혜'가 아닌 '미국인'이라는 사실 덕분이었음을.

만약 정말로 하나님이 굽어살폈다면, 수많은 희생자 중 종교인은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영웅심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는 선교사는

'사실 나는 방관자이다'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모든 진실들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지를 끔찍하게 여긴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산을 타고 광주를 빠져나온 폴과

하나님의 보호아래 우리가 멀쩡할 수 있었다는 선교사의 극과 극의 태도를 보면서,

과연 어느 것이 진정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인 것일까 잠시 고민해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바로 광주에서, 민간인을 향한 학살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1.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일종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행위이며 사건에 대한 솔직한 나의 목소리가 더해질 것이다.

(중략)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40년 전에 내가 목격한 것은 마치 오늘 일인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2. 한국 사람들은 지금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 나라 군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요. 미국인인 당신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대신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주세요.

 

3.우리가 무기를 반납하면 그 놈들은 이 무기를 이용해서 우리를 죽일겁니다. 이 무기들은 전부 부셔버립시다.

 

4. 마치 영혼들이 이 지역을 접수한 것 같았다.

5월의 태양은 여전히 따뜻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고, 새는 지저귀고, 은행나무의 여린 잎은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과연 누가 여기에 있었던 이 일을 목격했을까? 육신 없는 영혼들은 이 장면을 증언하지 못할 것이다.

 

5. 광주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그걸 원치 않았다.

이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선을 이미 넘었다는 걸 의미했다.

전두환과 쿠데타 세력은 우리가 여기에 남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 할까? 우리를 후원할까? 여기에 남는 걸 허락할까?

 

6. 절대 권력에 대한 항쟁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놀라웠다.

이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서있다고 분명히 믿고 있었다. 나도 이들이 올바른 역사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7. 미국인으로 자라면서 나는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국민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받는다고 믿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으니, 내가 미국에서 태어난 것은 일종의 특권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하는 독재정권 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런 목소리가 내 조국에서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8. 나는 더 이상 나환자촌에 사는 미친 평화봉사단원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바로 '그들의' 미친 평화봉사단원이었다.

 

키워드: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 평화봉사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