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기록

66. 마당을 나온 암탉-20.05.13

독서의 흔적 2020. 5. 13. 18:37

한국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 종이책 황선미(글)
김환영(그림)
윤예지(그림)
사계절 ★★★★★

 

후기 '꿈을 향한 단단한 발걸음'

일반판, 특별판 둘다 구입했고, 두권 다 읽었다.

고민 많이 했는데, 둘다 일러스트가 환상적이었다. 이런거에 혹하는 사람인지라 안 살수가 없었지 뭐야.

(그리고 예스24 사은품도 한 몫했다. 파일이 너무 갖고싶었다...)

초판한정 특별판 투명케이스가 신의 한 수였다.

책을 읽기 앞 서, 잎싹이 철장을 나올 수 있게 신중한 손길로 꺼내보았다.

'어디, 원하는만큼 마음대로 밖으로 나와봐. 그리고 자유롭게 네 이야기를 들려줘.'
일반판-특별판 순으로 읽었는데, 20년간 사랑받았다는 원작을 먼저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잎싹의 여정에 두 그림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져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
원작은 날카로우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어서 한몸 같았다면,

특별판은 강렬하면서 그 자체로도 한 편의 작품같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했다.

 

잎싹(암탉)은 마당의 아카시아 나무 잎사귀가 꽃을 낳고, 지는 걸 보면서 자신도 알을 낳고 병아리를 키우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더 이상 열악한 철장 속에서 낳고 싶지는 않았다. '알을 낳지 않겠어.'

굳은 다짐 때문일까. 정말로 하루, 이틀, 사흘... 알을 낳지 않은 잎싹은 폐계로 분류되어 구덩이로 내던져진다.

자칫하면 족제비의 먹이가 될 뻔한 잎싹을 구해준 나그네(청둥오리).

그는 다친 날개로 인해 원래의 무리에 낄 수도, 마당의 오리무리에 낄 수도 없었다.

나그네에게는 짝이 있었다. 작은 하얀 오리였다. 한 두번 보이지 않던 나그네가 언제부턴가 마당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그네에게 마음속으로 의지를 하고 있었던 잎싹은 또 다시 외로움에 파묻혀 이곳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던 어느날, 잎싹은 수풀에서 버려진 알 하나를 발견했다.

누가 볼 새라 곧바로 달려가 제 몸의 가슴털을 뽑아 둥지를 만들어 알을 품었다.

어디선가 나그네가 나타나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달이 차고 기우는 매일매일 나그네는 힘차게 춤을 추고 울어댔다.

'너는 강한 암탉이야. 알이 태어나면... 마당이 아니라 저수지로 가.' 이 말을 남기고 나그네는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알에서 태어난 것은 새끼 오리였다. 잎싹은 알을 품었으니 당연히 내 자식이라며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본다.

초록머리(새끼오리)가 성장하며 잎싹과 본인의 다른 생김새에 혼란을 느끼고,

이내 자라서 다른 청둥오리들 품으로 돌아갈때까지. 잎싹은 점점 말라갔지만, 누구보다 날카롭고 우아했다.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고, 또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리 속에서 잎싹은 또 다른 꿈을 향해 크게 날개짓 했다.

 

강한 자에겐 더 강하고 소신있는, 약한 자는 굽어 살피며 품는 포용력.

늘 마당 밖의 삶을 꿈꾸던,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고 싶었던 잎싹이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어쩜 저리 단단하고 거침이 없는지 한걸음 두걸음 내딛는 매 순간이 감탄과 감동의 연속이이었다

외롭던 잎싹에게 '너는 강한 암탉이야' 하고 나그네가 건넨 한마디는 잎싹을 정말로 강하게 만들었다.

그 한마디가 알을 구하기 위함인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진심이었을 거라고 믿고싶다.

잎싹의 희생과 단단함만큼이나 눈에 띈 것이 나그네의 희생이었다.

특별판 구입에 앞서 한 일러스트를 접했었다.

하늘에 변해가는 달이 그려져있고 그 아래에서 청둥오리가 춤을 추고있는 그림이었다.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책을 보니 이는 알을 살리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을텐데, 우아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그려졌다.

'마치 날아갈 것 같다'는 잎싹의 말처럼,

정말로 '날아갈' 것 같던 나그네의 그 모습은 알을 위한 숭고하고도 엄숙한 몸짓이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알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나그네를 보면서,
눈 앞에 닥친 시련 속에서도 더 약한 것들을 걱정하고 감싸는 잎싹을 보면서,

잎싹을 밀어내고 무리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초록머리를 보면서,

진정 원하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잎싹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꾸만 부모님과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잎싹과 부모님을 빗대어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뒤따르는 이별을 보면서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느새 작아진 부모님의 등이 눈에 아른거려서이다.

또 다른 소망은 '나는 것'이었다는 잎싹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며, 부모님의 다른 소망은 무엇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차별과 혐오를 딛고 날아오른 잎싹은 훨훨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는 초록머리의 발에 묶인 끈을 열심히 뒤쫓고 있지 않을까.

초록머리는 겨울이 오면 저수지로 다시 돌아와 잎싹의 흔적을 찾을텐데, 그때 눈 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지게 될까.

어린이 문학의 금기인 '죽음'을 다룬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연결해주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두려운 것'이 아닌,

'누구든 자연스럽게 언제든 겪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인상깊은 구절

1. 잎싹은 '잎사귀'라는 듯을 가진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믿었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2.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나는 너를 존경해

 

3. 저수지로 가는 오리들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해도 잎싹에게는 특별한 아침이었다.

들판 구석구석에서는 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 누가 죽는가 하면, 또 누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별과 만남을 거의 동시에 경험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만은 없다.

 

4.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5.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그게 뭔지 네 자신에게 물어봐."

"엄마가 혼자 남을 텐데. 마당에 갈 수도 없고."

"나는 괜찮아.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어서 외롭지 않을 거다."

 

6. 어두워지는 들판. 그 속을 뚫고 어미가 달려가고 있었다. 눈도 못 뜬 새끼들 때문에 곧 돌아와야 하는,

바람처럼 재빠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어미. 고달픈 애꾸눈 사냥꾼.

 

키워드: 암탉, 청둥오리, 족제비, 잎사귀, 알
꼬리(연결고리): 묘생만경

-사랑을 빼앗긴 암탉의 잔인한 복수극. 두 책을 두고 사랑이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