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소설 |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
전자책 |
로셀라 포르토리노 |
김지우 | 문예출판사 | ★★★★★ |
후기 '생명유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된 여성'
*쓰다보니 길어진 후기*
마지막 장을 읽고서 본능이 외쳤다. 이건 각잡고 후기 써야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다른 책들 후기를 허투루 쓴 것은 아니지만, 이 책만큼은 더 신중하게 쓰고 싶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많이 있다. 다만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는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작가의 이름을 빌려왔다는 차이가 있다.
로자 자우어는 작가의 본명에서 따온 '로자'와 독일어로 괴로움을 뜻하는 '자우어'가 합져진 이름이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원죄의식을 갖고있다는 뜻이다.로자 자우어는 끊임없이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나치가 행하는 일련의 행위들에 죄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현실에 순응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 현실에 순응한다는 표현을 쓰는게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순혈통인 로자 자우어는 그 혈통만으로 높은 계급에 속했으나,동시에 여자라는 신체적 특징으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해있었다.
그녀는 무기없는 군인이자 신분 높은 노예였다.
로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그녀에게 선택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죽음과 삶 모두 그녀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휘몰아치는 격변의 세상 속에서 로자는 죽지못해 살았다.
공습이 있었을 때에도, 그로인해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도, 남편이 실종되었을 때에도, 그녀의 친구를 잃었을 때에도,
독일이 패했을 때에도. 죽고자 했지만 죽지 못했다. 그녀의 반항들이 오히려 살고자하는 외침으로 느껴졌다.
매끼니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했으며, 살아있음에 안도했고, 죽지 못함을 슬퍼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조차 로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의 로맨스에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다. 겪어볼 수 없는 류의 상황이기 때문이리라.)
매 순간의 감정조차 온전한 자신의 것이 아니었지만, 자기 자신만은 잃지않았던 그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는 로자 자우어라는 한 여성의 일대기이자 거대한 역사서이다.
죽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한 시대의 희생양이자 증인인 마고뵐크와 모든 생존자들에게 바치는 헌정서라고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강한 것에서 가치를 찾지만, 생명은 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파괴할 수 없는 것에서 가치를 찾지만, 생명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강한 것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할 수도 있는 거다. 예를 들면 조국과 같이'
시대의 희생양이었던 그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인상깊은 구절
1. 어머니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죽음에 대항하는 것이라 했다. 어머니는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에 그런 말을 했다.
2. 내 몸은 총통의 음식을 흡수했다. 이제 총통의 음식은 피를 타고 내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무사했고 나는 또다시 배가 고팠다.
3. 어차피 여자에게 영웅적인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4.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할 영성체를 받기 위해 혀를 내밀 준비를 마친 신실한 신자들 같았다.
5. 나는 그리움의 대상이 없는 향수병을 앓았다. 그레고어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나는 삶이 그리웠다.
6. 일단 용인하면 그 정권에 대한 책임은 네게도 있는 것이다.모든 인간은 각자가 속한 국가 체제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은둔자조차 말이다.알아들었니?네게는 정치적 죄악에 대해 면죄부가 없다,로자.
7. 사실 생명이란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8. 사랑이란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상대방의 경계를 허물기를 열망하는 이방인 사이에서 생겨난다.
사랑은 서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남지 못한 것은 비밀 때문이 아니라 제3제국의 몰락 때문이었다.
9. 우리는 무기없는 군인이자 신분 높은 노예였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었고 실제로 라스텐 부르크 밖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존재를 몰랐다.
사족
곰곰히 생각해보니 로자 자우어는 사하맨션의 일부 사하들과 많이 닮은듯 하다.
특히 사라의 '난 이제 지렁이나 나방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미안하지만 언니, 오늘은 나 괜찮지 않아.' 이 한마디가 유난히 생각난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메모하면서 읽었다.
중간중간 배경지식도 찾아가며....
다 읽고서야 찾아본 문예출판사 포스트에는 책과 관련한 재미난 글들이 많이 있었다.
출판사가 이 책을 많이 사랑하는 구나 싶어서 마음이 따뜻해짐.
키워드 : 히틀러, 시식가, 여성, 2차 세계대전, 독일, 유대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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